본관은 대흥(大興). 초명(初名)은 한주(韓柱), 자는 안석(安石), 시호는 경열공(敬烈公). 아버지는 검교우복야(檢校右僕射) 한원경(韓元卿)이고, 어머니는 시전중내급사(試殿中內給事) 이인효(李因孝)의 딸 이씨(李氏)이다.
1133년 이지저(李之氐)와 함께 송나라에 사신으로 가다가 홍주(洪州) 해상에서 풍랑을 만나 되돌아왔다.
1135년 예부상서 동수국사(禮部尙書同修國史)를 역임하였고, 이듬해에는 추밀원부사로 당시 묘청(妙淸)의 난을 진압하는 중군병마사가 군무를 방해한다고 상주하여 충주목사로 강등되었다. 그 뒤 다시 기용되어 좌복야 추밀원사 판삼사사(左僕射樞密院使判三司事)를 지냈다.
참지정사 판공부사 겸태자소부(參知政事判工部事兼太子少傅)에 오르고, 판상서예부사 수국사 태자소보(判尙書禮部事修國事太子少保)·중서시랑문하평장사 태자소사(中書侍郎門下平章事太子少師)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144년(인종 22)에는 지공거(知貢擧)가 되어 과거를 관장하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