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학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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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사
제도
조선시대 사역원 한학생도를 가르친 종6품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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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시대 사역원 한학생도를 가르친 종6품 관직.
내용

정원은 4인이다. 그 중 2인은 문관이 겸임하였다. 태봉의 사대(史臺)와 고려의 통문관(通文館) 등 종래의 역학기관은 주로 한어(漢語)의 교습만을 담당하여왔는데, 정식으로 교수관이 설치되는 것은 1391년(공양왕 3)의 일이다.

이것은 대중국외교가 차지하는 비중이 월등하였기 때문인바, 이러한 전통은 조선시대에도 그대로 이어져『경국대전』에 몽학·왜학·여진학에는 정9품의 훈도만 2인씩 둔 데 비하여 한학에는 훈도 4인과 별도의 교수관을 두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조선왕조실록(朝鮮王朝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조선초기(朝鮮初期)의 기술관(技術官)과 그 지위(地位)-중인층(中人層)의 성립문제(成立問題)를 중심(中心)으로-」(이성무, 『혜암유홍렬박사화갑기념논총』, 1971)
「잡과시취(雜科試取)에 대한 일고(一考)」(이홍렬, 『백산학보』3, 1967)
집필자
박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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