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청주(淸州). 서울 출생. 1937년 일본 도쿄(東京)의 도안전문대학(圖案專門大學)을 졸업하고, 1939년에는 데이고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 연구과에서 약 1년간 유화(油畫)를 배우고 돌아와 산업 도안 활동과 유화가 생활을 병행하였다.
1938년 서울의 서양화 동인전 그룹이던 녹과전(綠果展)에 참여하여 사실적인 유화를 출품하였다. 1939년∼1944년에는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展] 서양화부에 해마다 출품하여 입선하면서 서양화가로서의 위치를 굳혔다.
한편 1940년에는 제약회사 유한양행(柳韓洋行)에 입사하여 제약 상품을 위한 각종 도안을 그리며 전문 그래픽 디자이너의 위치도 확고히 했다.
광복 직후인 1946년에는 그간의 도안계 동료였던 이완석(李完錫)·조능식(趙能植) 등과 조선산업미술가협회(1948년 대한산업미술협회로 개칭)를 조직하여 창립전을 가졌다. 그리고 회장도 역임하면서 개척적인 산업 미술 운동에 앞장섰다.
개인적으로는 1952년의 산업미술 개인전을 비롯하여 「모던 디자인전」(1958년)·「그래픽 디자인전」(1961년)·「그래픽 아트전」(1966년)·「시각 디자인전」(1967년) 등의 개인전을 지속적으로 개최하였다. 그 작품들은 주로 인물상이 담긴 각종 포스터와 현대적 구성의 그래픽 아트 등이었다.
한편,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학과 강사(1956년∼1959년), 홍익대학교 공예과 교수(1959년∼1969년), 덕성여자대학교 응용미술학과 교수(1975년∼1981년)를 지냈다. 1956년에는 한홍택도안연구소(1964년 서울도안전문연구소로 개칭)를 설립하여 운영하면서 이 분야의 후진 양성에도 많은 공헌을 하였다.
1953년 제2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국전(國展)〕서양화부에서 「귀향」이 특선하였다. 다음해 제3회전에는 「폐허의 당」을 무감사로 출품하였다. 그러나 국전의 운영 실태에 실망하여 그 뒤엔 외면했다. 그러나 그래픽 디자인 활동을 병행한 사실적이며 서정적인 유화 작업은 꾸준히 지속하였다.
1964년 양화가 단체인 신상회(新象會)에 가입하여 그 연례 회원 작품전에 출품하였다. 1966년에는 당시 상공부 주관의 대한민국상공미술전이 개최되자 추천 작가·심사 위원으로 참여하였다.
그 시기 이후의 유화는 서울 근교의 자연 풍경과 시골 마을의 향토적 정경을 자유로운 표현 감정으로 추구하다가 구성적인 변용의 화면 창조로 지향되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다시 풍경 대상의 자연주의적 접근을 나타냈다. 1993년 제25회 대한민국문화예술상 미술 부문에서 수상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