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안분지의 북편에 있는 해발 30m 정도의 낮은 구릉지상에 있다. 의령에서 사행해 흘러드는 남강(南江)과는 불과 1.5㎞ 정도의 거리를 두고 있다.
이 유적은 그 동안 학계에 전혀 알려지지 않은 채 방치되어오다가 1992년 10월 주민이 이 고분군을 도굴하던 범인들을 신고함으로써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에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에 의해서 수습되어 유적의 성격과 내용의 일부가 파악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모두 길이 4m 이내의 소형 덧널무덤[木槨墓] 7기가 확인되었다.
유구는 대부분 도굴이 심해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 것은 없었다. 겨우 유구의 형태와 바닥에 놓인 파손된 약간의 유물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목곽묘는 대부분 야산의 정선부(頂線部)와 사면(斜面)에 입지하고 있었다. 봉토는 모두 유실되어 삭평되었고 풍화암반층을 파내고 설치한 목곽의 상면부(床面部)만이 남아 있는 상태이다.
유구의 장축방향은 등고선방향이다. 유구의 평면형은 장단축비(長短軸比)가 1:3에 가까운 세장한 편이며 유구간의 중복도 그리 심하지 않은 편이다.
출토유물은 모두 103점으로 토기류(吐器類)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철기류(鐵器類)는 불과 10점 이내로서 매우 빈약한 상태이다.
유물의 부장(副葬)상태는 비교적 규칙성을 갖고 있어 대체로 단벽쪽에 치우쳐 토기가 일정하게 부장되어 있었다. 토기는 굽다리접시[高杯] · 짧은목항아리[短頸壺] · 파배(把杯) · 노형토기(爐形土器)가 주종이다.
특히, 굽다리접시의 경우는 대부분 각부(脚部)가 통형상(筒形狀)으로 이루어진 이른바 통형 굽다리접시[筒形高杯]이다. 또한 외면에 기하학적(幾何學的)인 문양이 그려진 문양개(紋樣蓋)들은 기형(器形)과 문양의 구성요소면에서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특이한 것으로 파악된다.
현재 이러한 문양개의 출토지점이 함안 · 의령 · 창원지역에 국한되어 있고 모두 남강 연안지역에서만 집중적으로 확인되고 있어서 이 지역 공유의 표지적인 토기문화로 파악할 수 있다.
철기는 철부(鐵斧) · 철촉(鐵鏃) · 철겸(鐵鎌)이 대부분이다. 인근에 위치한 함안 말이산고분군(末伊山古墳群)에서 보이는 풍부하고 다양한 철기부장 양상과는 큰 차이를 보이고 있어서 주목된다.
유구의 전체적인 현상과 출토유물들의 형태로 미뤄볼 때, 이 고분군은 4세기대 함안지역, 즉 아라가야(阿羅伽耶)의 일반인들의 매장 유적으로 생각된다. 고분군이 위치한 법수면 일대는 아라가야 정치세력의 중심권 밖에 존재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터전일 것으로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