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곡리 지곡마을 동쪽에 있는 임천강의 하천유역에 해발 150m 정도의 넓고 평평한 충적대지상에 다수의 고분이 분포되어 있다. 유적은 인근의 주민에 의해서 우연히 발견 신고되어, 1993년 3월 18일부터 3월 29일까지 국립창원문화재연구소(현, 국립가야문화유산연구소)에 의해서 일부가 발굴 조사되었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수혈식석곽(竪穴式石槨) 4기가 확인되었고, 토기류(土器類) 24점, 철기류(鐵器類) 30점을 수습하였다.
석곽은 모두 길이 2∼4.5m 이내의 소형들로서 주축방향은 강의 흐름과 나란하다. 석곽은 하천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냇돌을 이용해 4벽의 최하단석부터 서로 물리도록 쌓아 올리고 모서리부분은 둥글게 축조하였다. 석곽의 상부는 이미 훼손된 상태여서 원래의 모습은 파악할 수 없으나 석개(石蓋)보다는 목개(木蓋)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추정된다.
유구 내에서 출토된 유물들은 장경호(長頸壺)와 직구호(直口壺)들만 있어, 고배(高杯)나 기대(器臺) 등 주변의 대가야(大加耶)문화권내에서 많이 보이는 토기유물들은 전혀 부장되지 않았다. 또한 이 유적에서는 이른바 ‘진주식토기(晋州式土器)’라 명명되는 수평구연호(水平口緣壺)가 다수 확인되고 있어서 이 지역에 실재했던 세력집단의 성향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준다.
매우 한정된 범위 내에서의 조사여서 이 유적의 전체적인 내용을 정확히 파악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 유적은 조성연대가 대체로 5세기 후엽에서 6세기 전반경의 어느 시점일 것으로 추정되며, 이 지역의 유력자를 포함한 일반인들의 집단매장지로 이용되었던 것 같다. 또한 인근에 있는 함양 백천리고분군(白川里古墳群), 상백리고분(上柏里古墳) 등과 서로 관련지어 볼 때, 지금까지 기록상에는 보이지 않는 가야제국(加耶諸國) 중 한 나라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높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