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16년(숙종 42) 홍명원의 증손 홍우령(洪禹寧)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문은 없고, 권말에 홍우령의 발문이 있다.
5권 2책. 목판본. 이화여자대학교 도서관에 있다.
각 권별로 목록이 있으며, 권1∼3에 시 439수, 보유(補遺)로 과체시(科體詩) 2수, 표(表) 1편, 권4에 서(書) 2편, 정문(呈文) 8편, 의(議) 1편, 기(記) 1편, 제문 4편, 권5에 부록으로 행장·묘갈명·제문·만장 등이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시와 문장에 뛰어나 당시에 문명을 크게 떨쳤는데, 특히 시는 당대(唐代)의 수준에 근접한다는 평을 들었다. 권1의 시 「망부석(望夫石)」은 오언체의 장편으로 전설에 얽힌 남녀 간의 정화(情話)를 억양 있는 표현으로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이안눌(李安訥)의 시에 차운(次韻)·화답(和答)한 것이 많은 것으로 보아 그들 간에 시를 통한 문학적 교유가 깊었음을 알 수 있다.
「유마천령차자민운(踰摩天嶺次子敏韻)」은 저자가 한때 권신(權臣)들의 탄핵을 받아 함경도로 좌천되어 가던 도중 마천령을 넘으면서 괴로운 심회를 읊은 것이다. 성천강(城川江) 너머 망망하게 펼쳐진 들판을 조망하며, 하염없이 울적한 심사를 은유적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유천불산(遊千佛山)」은 장편의 기행시로 감흥을 섞어 산경(山景)을 운치 있게 묘사한 역작이다. 또한, 광해군 초 후금(後金)과 수교한 사실이 명나라에 알려져 이를 무마하기 위한 급고사(急告使)로 명나라에 갔을 때 여행 노정의 감회를 읊은 시가 여러 수 있다. 그 가운데 「옥하관(玉河關)」은 이국의 객관에서 느끼는 나그네의 우수와 번민을 잘 묘사하고 있다.
표의 「염초허무사은표(焰硝許貿謝恩表)」는 명나라 황제에게 화약의 원료인 염초의 무역을 터준 데 대한 감사의 뜻을 표하는 글로서, 당시 대명 교섭에 있어서의 소임을 짐작할 수 있다. 서(書)의 「상재상논산성사의서(上宰相論山城事宜書)」는 죽주부사(竹州府使)로 재임할 때 그 곳 산성 구축에 관해 중앙의 상신(相臣)에게 공사의 진척 상황을 상세하게 보고하는 내용의 글이다.
정문은 모두 명나라에 급고사로 갔을 때 병부 등 각 요로에 제출한 글로, 우리나라가 후금과 수교한 사실이 명나라에 알려져 이를 해명하는 내용의 글이다. 당시 후금 및 명과의 미묘한 외교관계를 연구하는 데 귀중한 참고자료로 평가된다. 제문에는 광주목사(光州牧使)로 있을 때 지은 「무등산기우제문(無等山祈雨祭文)」 등 3편의 기우제문이 있다. 문에 있어서도 저자의 문학적 재질이 뛰어남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