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서지방 ()

황해도전도(해서지도 제2첩)
황해도전도(해서지도 제2첩)
인문지리
지명
황해도의 별칭.
이칭
이칭
서해도(西海道), 황해도, 풍해도(豊海道)
정의
황해도의 별칭.
명칭 유래

황해도의 위치는 현재의 서울을 중심으로 할 때에 바다 건너 서쪽 편에 해당된다. 그리고 서울에서 서북지방〔현재 서울과 황해도〕을 내왕하기 위해서는 예성강구의 벽란도진(碧瀾渡津)을 반드시 건너야 하므로 ‘해서(海西)’라는 명칭이 붙여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자연환경

북쪽은 대동강과 언진산맥이 평안남도와 경계를 이루고, 동남쪽은 예성강과 마식령산맥이 경기도 및 강원도와 경계를 이룬다. 서쪽은 장산곶을 정점으로 황해에 돌출하고 있으며, 남쪽 역시 황해에 접하고 있다. 재령강·예성강·임진강 등의 주변으로는 낮은 구릉성 산지와 평야가 발달해 있지만, 해서지방은 대체로 산지가 많은 편이다. 임진강은 유로연장이 254.0㎞로, 우리나라 제7위의 하천이고, 예성강은 10위, 재령강은 11위를 차지한다.

주요 하천인 예성강과 재령강 유역에는 연백평야와 재령평야가 발달해 있는데, 이들 평야는 북한에서 가장 넓은 농경지를 형성한다. 해안선의 총연장은 1,618㎞인데 웅진반도 이남은 해안선이 복잡한 리아스식 해안의 특징을 나타낸다. 연안은 조석의 차가 크고 수심이 얕아 간석지가 널리 발달하여 해안선에 비해 양항(良港)이 적고, 130여 개의 도서가 산재한다.

해서지방은 북동동에서 남서서 방향의 멸악산맥이 중앙으로 달리는 까닭에, 이 산맥에 의해 남북으로 다시 지역구분이 된다. 북쪽은 황북(黃北)에 해당하지만, 재령강과 대동강 유역을 중심으로 평안남도와 결합되고 있는 까닭에 황평지역(黃平地域)으로 통용된다. 이에 대하여 멸악산맥 이남은 황남지역(黃南地域)으로 통용되지만, 지리적 특성은 경기 지방과 유사한 중부 지방의 성격을 안고 있다.

연평균기온은 10℃ 내외이고 연평균 강수량은 1,000㎜ 내외이며, 광량만 일대는 우리나라에서 일조시수가 많고 강수량은 극히 적은 지역이다. 이 까닭에 해서지방의 해안에서는 천일제염업이 발달하였다. 멸악산맥은 대체로 9월 평균 18℃의 등온선과 일치하므로 이남의 황남지역은 경기 지방과 같이 중생종(中生種)이 재배되지만, 북쪽의 황평지역은 조생종(早生種)이 재배된다. 이러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해서지방 전체는 지리적 특징이 비슷하다. 즉, 방언구를 보면 이 지방은 경기 방언구에 해당되어 그 경계는 대동강유역과 언진산맥에까지 확장됨으로써 멸악산맥의 경계적 의미는 소멸되고 있다.

형성 및 변천

이 지방은 대동강과 재령강 유역을 중심으로 선사 유물 다밀 지대로 알려져 있으며, 봉산군을 중심으로 수혈식주거(竪穴式住居)가 발견되고 있다. 이러한 점으로 보아, 이미 선사시대부터 중요한 생활 무대가 되어왔음을 알 수 있다. 또한 이곳은 기자조선과 한사군의 설치 과정에서 대륙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은 곳이기도 하다.

삼국이 정립된 후부터는 정치적 상황이 달라졌지만, 우리 민족문화는 계속 이어져왔다. 삼국 시대에 이곳은 고구려의 영토로 귀속되어 고구려의 고유문화가 이어져 왔지만, 신라의 삼국 통일 이후에는 통일신라의 영토로 귀속되었다.

통일신라의 영토는 패수(浿水, 대동강) 이남에 국한되었으므로 해서지방은 변경의 성격을 안은 채 신라 문화의 요소가 새롭게 혼합되어 갔다. 그 뒤 고구려의 영토 수복을 내걸고 북진정책을 강행하였던 고려 시대에 들어오면서 변경의 성격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 뒤 성종의 10도 편성시에는 황주와 해주를 통치의 중심지로 삼고 관내도에 편입시켰으나, 얼마 뒤 서해도(西海道)를 신설하였다.

서해도의 신설은 오늘의 황해도 윤곽을 확립하였고, 앞뒤가 뒤바뀌기는 하였으나 해서지방이라는 명칭이 생기게 된 계기가 되었다. 조선의 건국과 더불어 이 지방은 한때 풍해도(豊海道)로 통용되었지만, 바다 ‘해(海)’의 고지명은 계승되어 바다와 무관하지 않은 지방임을 보여주고 있다.

그 뒤 8도로 편성하는 과정에서 이 지방은 통치의 중심지인 황주와 해주의 첫 자를 따서 황해도로 바뀌었다. 고려 시대에 제정된 서해도의 명칭이 나타난 이래 바다 ‘해’자가 빠지지 않고 있으므로, ‘해’자는 곧 이 지방을 상징하는 고유 명칭으로 이어지고 있다. 1952년의 북한 행정구역개편으로 황해도는 황해남도와 황해북도로 분리됨으로써, 황해남도는 황해에 접하지만 황해북도는 내륙에 위치하게 되었다.

현황

작물을 심는 방식과 작물 분포를 토대로 한 토지이용의 유형을 볼 때에 이 지방은 2모 3작 지대에 해당되어 그 범위가 황평·강원에까지 확대됨으로써, 멸악산맥이 지니는 경계로서의 의미는 미약해졌다. 그러나 농업 경영에 이용되는 토착적인 농기구를 토대로 할 때에 아래 귀〔下耳〕가 넓은 호미의 분포 범위가 해서지방의 공간 범위와 일치하여 농업 문화의 동질성을 나타내고 있다.

복합 문화의 상징으로 표현되고 있는 가옥 구조를 볼 때, 멸악산맥을 경계로 북부에는 서부형, 남부에는 중부형이 나타난다. 서부형은 온돌이 단열(單列)로 되고 대청이 생략되고 있는 데 반하여, 중부형은 대청과 건넌방이 곡부(曲部) 형태로 추가되고 있는 것이 특색이다. 이것은 또한 벼의 조생종과 중생종의 재배 한계와 일치하고 있다.

2009년 기준으로 황해남도에는 3개 시 15개 군에 8개 노동자구가 설치되어 있으며, 황해북도에는 1개 시 19개 군에 11개 노동자구가 설치되어 있다.

참고문헌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2009 북한 개요』(통일연구원 편, 통일연구원, 2009)
『한국지리』(권혁재, 법문사, 2005)
『신한국지리』(강석오, 대학교재사, 1984)
『한국지지-총론-』(건설부국립지리원,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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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미디어 (5)
집필자
오홍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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