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천추범』은 1896년 민영환 특사 일행이 러시아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대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과정을 서술한 견문록이다. 역관으로 사행에 참여한 김득련이 기술한 내용에 민영환이 가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896년 4월 1일에 서울을 출발하여 상해-요코하마-밴쿠버-뉴욕-리버풀-런던-플러싱-베를린-바르샤바 등을 거쳐 5월 20일에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러시아의 요청으로 귀국하는 길에 시베리아를 경유하였다. 모스크바-이르쿠츠크-바이칼호-울란우데-치타-블라고베시첸스크-하바로프스크·블라디보스토크·부산·인천을 거쳐 서울에 도착하여 세계를 일주하였다.
서명의 뜻은 확실하지 않으나, ‘해천(海天)’은 태평양 · 대서양을 항행한 데서, ‘추범(秋帆)’은 귀국하던 당시 가을이어서 붙여진 것으로 추측된다. 서두에는 임명 조칙이 실려 있으며, 이어 사행 기간 동안 활동한 사항들이 날짜순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리고 말미에는 관련 국서(國書) 및 사행 시집 등이 부록으로 첨부되어 있다. 1958년에 간행된 『민충정공유고집』 권3에 원문이 모두 실려 있으며, 같은 해 을유문화사(乙酉文化社)에서 번역본을 간행하였다.
특명전권공사 민영환을 비롯하여 수원(隨員) 자격의 학부협판 윤치호(尹致昊), 2등 참서관 김득련, 3등 참서관 김도일(金道一), 민영환의 수종(隨從) 손희영(孫熙永), 그리고 통역 겸 안내자인 러시아 사람 스타인 등의 특사일행은 1896년 4월 1일 서울을 출발하여 상해(上海)-요코하마(橫濱)-밴쿠버-뉴욕-리버풀-런던-플러싱-베를린-바르샤바 등을 거쳐 56일 만에 대관식 6일 전인 5월 20일, 모스크바에 도착하였다.
그러나 대관식장 안에서는 관(冠)을 쓸 수 없다고 하여, 일행은 정작 식이 거행되던 성당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고 밖의 플랫폼에서 대관식을 지켜보아야만 하였다. 얼마 뒤 특사일행이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려고 할 때, 러시아 측은 조선에서의 자국의 영향력을 확대하고자 금은광산, 철도, 무역, 중국 · 러시아 국경상황 등을 볼 수 있는 시베리아를 경유하여 귀국할 것을 권유하였다.
그리하여 이들은 러시아의 군기산업 · 농업 · 광업 · 임업 등 각종 근대시설을 돌아볼 수 있었고, 나름대로 러시아의 문물에 관해 깊은 관심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때는 아직 시베리아 철도가 완공되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철도와 마차 또는 내륙의 강줄기를 따라 선편을 이용하는 등 사행의 귀로는 순탄하지가 않았다.
이들이 모스크바-이르쿠츠크-바이칼호-울란우데-치타-블라고베시첸스크-하바로프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 부산 · 인천의 경로를 거쳐 서울에 도착한 것은 만 6개월 20일 만인 1896년 10월 21일이었다. 결국 이들은 세계를 일주한 셈이고, 이 책은 한국인 최초의 세계일주기록물이 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이 하바로프스크 · 블라디보스토크 등을 거치면서 이 일대에 광범위하게 산재하던 한인 이주민에 관해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이에 따르면 한인은 이 일대에서 수십 호에서 수천 또는 1만여 호에 다다를 정도로 두루 편재하여 거주한 것으로 되어 있다.
대한제국기, 특히 러시아의 영향력이 강화되어가던 아관파천 시기의 한 · 러교섭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