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홍인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후기 계축옥사와 관련된 학자. 서얼.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613년(광해군 5)
관련 사건
계축옥사
목차
정의
조선후기 계축옥사와 관련된 학자. 서얼.
생애 및 활동사항

강변칠우(江邊七友)의 한 사람이다. 당대 고관의 서자(庶子)로서 글을 잘하여 이름이 있었으나, 신분상의 제약으로 벼슬을 할 수 없게 되자 현실을 비관하고 1609년(광해군 1) 같은 서자 출신인 박응서(朴應犀)·서양갑(徐羊甲)·심우영(沈友英)·박치의(朴致毅)·박종인(朴宗仁)·유인발(柳仁發) 등과 함께 여주 북한강 가에 살면서 강변칠우라 자처하였다.

시주(詩酒)로 세월을 보내고 생활이 사치스러워 행적을 의심받던 중 1613년 문경 새재[鳥嶺]에서 행상을 죽이고 은(銀)을 강탈한 사건의 범인으로 다른 일당과 함께 체포되었다.

국문을 받던 중 대북파의 사주를 받고 박응서가 김제남(金悌男)과 밀통하여 영창대군(永昌大君)을 옹립하기 위한 자금조달을 목적으로 도둑질하였다고 허위자백하여 계축옥사를 유발시켰다. 그 결과 김제남은 즉각 처형되고, 영창대군도 유배당하였으며, 이들도 모두 처형당하였다.

참고문헌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청파일월록(靑坡日月錄)』
『상촌집(象村集)』
『조야회통(朝野會通)』
『한음문고(漢陰文稿)』
집필자
이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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