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란굴(金蘭窟)에 놀면서 군주가 나라를 다스리는 길을 노래한 3편의 가요 중 하나로, 나머지 2편은 「대도곡(大道曲)」·「문군곡(問群曲)」이다.
가사는 전하지 않고, 노래의 내력만이 『삼국유사』 기이편(紀異篇) 경문대왕조에 기록되어 있다. 대구화상(大矩和尙)에 의하여 악곡에 올려졌다고 한다. 창작 경위로 보아 향가 가운데 「안민가(安民歌)」와 맥락을 같이하는 것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개인의 순수한 서정보다는 이념적·교술적 성격이 짙게 투영되었을 것으로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