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사문집 ()

혜사문집
혜사문집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인 · 의사(義士), 강원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1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조선 후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생존한 문인 · 의사(義士), 강원형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61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61년 강원형의 아들 강봉희(姜鳳熙)가 편집·간행하였다. 권두에 김창숙(金昌淑)·이수기(李壽麒)의 서문, 권말에 박문식(朴文植)과 강봉희의 발문이 실려 있다. 1968년 혜사 강원형 선생 기념사업회에서 국역한 바 있다.

서지적 사항

2권 1책. 석인본. 장서각 도서와 국립중앙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10수, 소(疏) 3편, 서(書) 2편, 잡저·제문·연보 각 1편, 권2에 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대부분 수창이나, 「영설연구사십오운(詠雪聯句四十五韻)」은 1905년 경무청에 잡혀가 이설(李偰)·김복한(金福漢)·장지연(張志淵) 등 8인과 함께 읊은 작품으로 우국의 정을 담고 있다.

「청환어겸진구폐소(請還御兼陳救弊疏)」는 고종의 아관파천(俄館播遷)으로 국위가 손상된 점을 지적하면서 역사 전고를 들어 시국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방도를 논리 정연하게 제시한 글이다. 내용은 첫째 고종의 환궁과 국가 위신의 회복, 둘째 구제도의 혁신, 셋째 충성스럽고 재능 있는 인재의 등용, 넷째 토지제도의 개혁, 다섯째 근검절약을 기저로 한 국가 재정의 확보와 예산의 올바른 집행 등이다.

「청파오조협약참제적신소(請罷五條脅約斬諸賊臣疏)」는 을사조약에 반대하여 13도 유생을 대표해 올린 글이다. 조약의 부당성과 일제 침략의 진상을 밝히고, 오적신(五賊臣)의 매국적 행위를 규탄하고 있다. 이 사건으로 옥고를 치를 만큼 불의에 대한 비분강개와 선비의 절조를 담고 있다. 「재소(再疏)」 역시 유사한 내용이다.

두 편의 편지는 일본 공관과 영국·미국·프랑스·독일·청나라 등에 보낸 것으로 각기 『황성신문(皇城新聞)』에 실린 바 있다. 「여일공관공함(與日公館公函)」은 전문이 전하지 않지만,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저지른 기만적 행위와 산림 벌채, 황무지 개간, 철도 부설, 경찰권 설치, 인명 살상 등 일본의 침략 사실을 조목조목 규탄한 내용이다. 「여영미법덕청각공관공함(與英美法德淸各公館公函)」에서는 을사조약의 부당성을 각국에 고하면서 일본의 조약 강제를 야만적 폭행으로 규정하였다.

「당후일기(堂後日記)」는 승정원 가주서로 있을 때인 1893년(고종 30) 2월 22일에서 27일까지의 기록으로, 당시의 국정이 소상하게 적힌 귀중한 사료다. 부록에는 저자에 대한 가장·행장·묘갈명·묘지명 등과 이상걸(李相杰)·배석하(裵錫夏)의 만사, 박응식(朴應植) 외 11인의 제문, 강봉희가 쓴 「묘도수갈고유문(墓道竪碣告由文)」, 수갈(竪碣) 후에 쓴 강봉희 외 8인의 시, 「혜사정기(蕙社亭記)」, 상량문 등이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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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필자
한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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