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무신왕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갈사국왕(葛思國王)의 손녀로, 대무신왕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얼굴이 수려하여 부왕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으며, 그래서 이름을 ‘호동’이라 하였다고 한다.
32년 4월 옥저로 놀이를 나갔다가 낙랑왕(樂浪王)최리(崔理)를 만나, 함께 낙랑으로 가서 그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런데 당시 낙랑에는 적병이 침입해 오면 스스로 울어 위기를 알리는 북과 뿔피리가 있어, 고구려가 낙랑을 정복하기 어려웠다.
이에 호동은 최리의 딸로 하여금 몰래 북과 뿔피리를 파괴하게 하고 고구려군대를 이끌고 낙랑을 정복하였다고 한다. 일설에는 대무신왕이 낙랑을 멸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호동을 최리의 딸과 정략혼인시키고, 그녀를 본국으로 돌려보내 북과 뿔피리를 파괴하게 하였다고도 한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낙랑에 대해 중국 군현의 하나인 낙랑군으로 보지 않고, 독립세력인 낙랑국으로 간주하는 견해도 있다. 그 뒤 대무신왕의 원비(元妃)가 모함을 하여 부왕의 의심을 사게 되었는데, 변명을 하는 것은 원비의 죄를 드러내는 것이 된다고 생각하여 자결하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