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책(41장). 필사본. 1844년(헌종 10)에 탈고되었다.
『호산외사』의 권두에 조희룡의 자서가 붙어 있다. 수록된 인물은 중인·화가·승려·몰락양반 가운데 특이한 행적을 남긴 42인이다. 김신선(金神仙)·조신선(曺神仙) 등의 기인과 최북(崔北)·임희지(林熙之)·김홍도(金弘道)·이재관(李在寬)·전기(田琦) 등의 화가와 유세통(庾世通)·장우벽(張友璧)·장혼(張混)·천수경(千壽慶)·엄계흥(嚴啓興)·조수삼(趙秀三)·박윤묵(朴允默)·이단전(李亶佃) 등의 위항시인(委巷詩人)과 기타 효행과 열절(烈節 ; 장하게 지키는 곧은 절개) 등으로 이름을 남긴 몰락양반과 위항인 등이 수록되어 있다.
『호산외사』는 기존의 사서(史書)나 문집을 참조한 것이 아니고 여항(閭巷 ; 서민들이 사는 거리)에 떠도는 인물담을 채록한 것이어서 정통한문학 양식인 전(傳)과는 이동(異同 ; 다른 것과 같은 것)이 있다. 흔히 전에서 보이던 본관이나 가계는 생략하고 바로 행적 자체를 기술하는 체재를 취하면서도 평찬(評贊)을 뒤에 붙였다.
이와 같은 점은 사마천(司馬遷)이 『사기(史記)』에서 보여준 불우한 위항인의 입전에 근거를 두어 위항인 자신들의 이름을 후세에 드리우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것이면서, 위항인 조희룡이 느꼈던 신분제도의 모순을 적절하게 비판할 수 있는 장점을 함께 갖춘 것으로 보인다.
『호산외사』같이 위항인의 전기물은 조희룡이 서문을 써준 유재건(劉在建)의 『이향견문록(里鄕見聞錄)』 등으로 활성화되기도 한다.
『호산외사』의 명칭은 규장각본과 장지연(張志淵)의 『일사유사(逸士遺事)』, 오세창(吳世昌)의 『근역서화징(槿域書畫徵)』에서는 ‘호산외사’로 되어 있다. 고려대학교 도서관본에는 ‘호산기(壺山記)’,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에 조희룡이 스스로 말한 서명과 그 책의 인용서목은 ‘호산외기(壺山外記)’로 되어 있다.
『호산외사』는 1974년 아세아문화사(亞細亞文化社)에서 『이향견문록』과 합쳐 영인한 바 있다. 규장각도서와 고려대학교 도서관도서 등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