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2년 임진왜란 때 군사를 일으켜 적을 토벌하여 그 공으로 수원판관에 임명되었다. 그의 천첩(賤妾)으로부터 난 아들 홍계남(洪季男)이 용맹과 힘이 남보다 뛰어나고 말타고 활쏘기를 잘하여 금군(禁軍)에 소속되었다.
1590년(선조 23) 통신사의 군관으로 일본에 다녀왔기 때문에 적의 정상을 잘 알았다. 부자가 함께 의병을 일으켜 대승하자 홍계남이 당상관에 승진되고 홍언수는 경기조방장에 임명되었다.
그는 아들이 다른 군진에 갔을 때 왜군의 습격을 받아 분전 끝에 전사하였고, 왜군은 그의 시체를 가져가버렸다. 그의 아들이 돌아와 단기(單騎)로 적지에 들어가 시체를 탈취하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