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초명은 대영(大榮). 자는 이수(而壽), 호는 족수거사(足睡居士). 아버지는 영의정 홍낙성(洪樂性)이다.
1783년(정조 7) 사마시에 합격한 뒤 문음(門蔭)으로 벼슬길에 나가 호조참의·우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경사(經史)·제자백가서·음양·의약·복서 및 손오(孫吳)의 병법서, 노불(老佛)의 서적까지 박통하였다.
성격이 강직하고 권귀(權貴)를 싫어하여 비타협적이었으나, 자기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이나 곤궁한 사람에게는 관대하고 포용적인 태도를 취하였다.
저서로는 『족수당집』이 있고, 편서로는 『황명사략(皇明史略)』·『당명신언행록(唐名臣言行錄』·『좌전인명보(左傳人名譜)』·『춘추공곡합선(春秋公穀合選)』·『모시다직편(毛詩多織編)』·『속사략(續史略)』 등이 있으며, 고문(古文) 수 편과 고근체시(古近體詩) 2,000여 편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