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 밀양 출신.
1919년 3월 11일 부산 일신여학교(日新女學校) 학생들의 의거는 경상남도 지방에서도 항쟁의 계기를 만들어 주었고, 또 이 고장의 자주독립의 항일의식을 더 한층 높여주었다.
당시 부산공립보통학교 교사로 있던 홍재문은 이 소식을 듣고 학생 배수원(裵守元) 등과 독립만세운동에 대한 회의를 한 뒤, 4월 3일을 기하여 기독교도들을 중심으로 의거하기로 하고, 또 민중의 독립정신을 함양하기 위하여 조선독립신문을 발행하기로 하였다.
4월 3일 오후 2시 30분경 독립만세라고 쓴 큰 깃발을 좌천동 거리에 세워두고 수백 명 군중의 선두에 서서 대한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시위운동을 벌이다가, 출동한 일본경찰에 의하여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 뒤에도 조국독립을 위한 열망을 버리지 않고 독립투쟁을 계속하던 중 1921년 군자금을 모금하기 위하여 활약하다가 붙잡혀 7년의 옥고를 치렀다.
1977년 건국포장, 1990년 애국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