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와문집 ()

유교
문헌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은성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0년에 간행한 시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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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 후기부터 대한제국기까지 생존한 학자, 은성집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40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40년 은희성(殷熙聖)이 주관하여 간행하였다. 권두에 김홍락(金鴻洛)의 서문, 권말에 이수락(李洙洛)·은기표(殷箕杓) 등의 발문이 있다.

서지적 사항

4권 2책. 목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과 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에 시 110여수, 권2에 서(書) 29편, 잡저 8편, 권3에 서(序) 7편, 묘갈명 1편, 유사 1편, 제문 8편, 권4에 부록 등이 수록되어 있다.

시는 독서와 강학(講學)을 하면서 여가 틈틈이 지은 것이 대부분이며, 만시도 많다. 서(書)는 일상 안부나 독서 소감을 적은 것으로 채워져 있으나, 그 가운데 「답홍순교재관별지(答洪舜敎在寬別紙)」는 『중용』을 풀이한 장문이다.

잡저 가운데 「시남유교목설(詩南有喬木說)」은 『시경』「한광(漢廣)」의 ‘남유교목(南有喬木)’을 풀이한 것이다. 잔가지 없이 죽 뻗은 나무를 단정한 여자에 비유해 풀이한 글이다. 「용고외우민암(用顧畏于民巖)」은 백성의 고통을 생각해 바른 정사를 베풀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며,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는 학정의 고통을 역사 전고를 들어가며 설명한 것이다.

서(序)는 대부분 향리에 은거하면서 주변 경관과 처소가 주는 의미를 기술한 것이다. 유사는 아버지에 대한 기록을 모은 것이다. 부록에는 이인긍(李寅兢) 외 50인의 만사, 이원재(李元在) 외 11인의 제문, 송준필(宋浚弼)의 행장, 아들 은봉상(殷鳳祥)의 유사, 1922년 김재경(金在敬)이 쓴 유사후소지(遺事後小識), 1931년 이정기(李貞基)가 쓴 행록, 장석신(張錫藎)의 묘갈명, 홍재관(洪在寬)의 묘지명 등이 있다.

또한, 김두현(金斗鉉)이 군위향교를 대표해 저자의 표창을 상신한 「군위향교통도산도회소문(軍威鄕校通陶山道會所文)」, 이창재(李菖在) 등 58인이 군수 장한기(張漢基)에게 표창을 상신한 「일군사림정장군수한기장(一郡士林呈張郡守漢基狀)」, 비슷한 내용인 「일군사림정신관찰태휴장(一郡士林呈申觀察泰休狀)」·「일도신보정이관찰근호장(一道紳甫呈李觀察根澔狀)」, 이에 대한 답인 신태휴의 「정장례원단자(呈掌禮院單子)」, 그밖에 「본군향교사림정삼강록속수도약장조보국병식장(本郡鄕校士林呈三綱錄續修都約長趙輔國秉式狀)」 등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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