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옥저(南沃沮)의 땅으로 고구려가 장령진(長嶺鎭)을 설치하였으며 박평군(博平郡)이라고도 하였다. 고려 초에 화주로 바꾸었고, 955년(광종 6) 성보(城堡)를 쌓았으며 995년(성종 14) 화주안변도호부(和州安邊都護府)로 하였고, 1018년(현종 9) 화주방어사(和州防禦使)로 낮추었다.
1258년(고종 45) 원나라의 쌍성총관부(雙城摠管府)에 들면서 등주(登州)와 합쳤고 뒤에 통주(通州)를 합쳤다가 1278년(충렬왕 4) 고려의 땅이 되었다. 1356년(공민왕 5) 화주목(和州牧)으로 하였고 1369년 화령부(和寧府)로 높여 부윤(府尹)·소윤(小尹)·판관(判官)을 두었다. 이곳은 고려의 국경지역으로 고려시대부터 거란·동진(東眞)·몽골의 침입을 끊임없이 받았던 곳이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조의 외향(外鄕)이어서 대도호부를 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