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일지(一之), 호는 월담(月潭). 풍저창수 황준원(黃浚源)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종친부전부 황탕경(黃湯卿)이고, 아버지는 영춘현감 황수(黃琇)이며, 어머니는 정랑 이준(李浚)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문장에 뛰어나서 많은 칭찬을 받았고 1589년(선조 22) 생원이 되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주에 가서 임금을 만나 전함사별좌(典艦司別坐)가 되어 경양도찰방(景陽道察訪)·내섬시직장·호조좌랑을 거쳐 송화현감, 공조와 호조의 정랑이 되었다.
1606년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고, 경상도도사를 거쳐 다음 해 예조정랑·지평이 되고, 1609년(광해군 1) 부사직으로 있다가, 뒤에 금산·양근의 군수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려 안변부사로 승진되었다.
1615년 강원감사가 되어 지극한 효행으로 널리 알려졌다. 이 해 동부승지·좌부승지를 거쳐 전라도관찰사를 지냈다. 인조반정 이후 은거하며 벼슬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