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황준성(黃俊性). 전라북도(현, 전북특별자치도) 진안 출신.
의병활동을 하다가 1907년 12월에 체포되어 내란죄 명목으로 평리원(平理院)에서 유형(流刑) 10년을 선고받고 전라남도 완도에서 유배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일대에서 의병이 봉기하자 의병장 강성택(姜成宅)과 상의하여 1909년 6월 유배지를 탈출, 강성택 휘하의 의병과 함께 총으로 무장하고 완도 · 해남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다음 달인 7월 추공엽(秋珙燁) · 황두일(黃斗一)의 의병부대와 합류, 대장으로 추대되어 강성택 · 추공엽 등을 부장으로 임명하고 휘하의 의병 150여명으로 부대를 정비하였다.
완도에서 4개리의 이장을 소집하여 의병자금을 모집하고, 해남에서 일진회원과 일본 헌병의 밀정을 처단하는 등의 활동을 계속하다가 대둔사(大屯寺)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야습을 받아 의병부대가 해체되자 숨어 지내다가 1909년 12월 붙잡혔다.
1910년 2월 광주지방재판소 목포지부에서 교수형을 선고받고 항소하였으나 대구공소원과 고등법원에서 모두 기각되었다.
1986년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