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창원(昌原). 자는 시망(時望), 호는 영곡(影谷)·비목당(卑牧堂). 군수 인(璘)의 아들이다. 1576년(선조 9)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벼슬은 경력(經歷)을 지냈다.
묵포도(墨葡萄)를 특히 잘 그려 이정(李霆)의 묵죽(墨竹)과 어몽룡(魚夢龍)의 묵매(墨梅)와 함께 삼절(三絶)로 일컬어졌다. 유존작품은 극히 희소한 편으로,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소폭의 「묵포도도」 1점이 남아 있을 뿐이다.
한 송이의 포도와 거기에서 파생된 두 줄기를 X자형으로 포치한 이 그림은 농도를 달리하는 여러 먹색을 서로 대비시킴으로써 변화감을 자아낸다. 이러한 기법은 단순하면서도 대담한 구도와 소재처리방식과 더불어 그의 뛰어난 격조와 기량을 보여준다.
이와 같은 화법은 같은 시대의 이우(李瑀)·이계호(李繼祜)·홍수주(洪壽疇) 등에게 얼마간의 차이를 드러내며 이어져 조선 중기 묵포도 전통의 근간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