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녀 지은 설화」는 『삼국사기(三國史記)』 권 48 「열전(列傳)」 제8 「효녀 지은(孝女知恩)」편에 실려 있는 이야기이다. 유사한 이야기가 『삼국유사(三國遺事)』 권 5 「효선(孝善)」 제9 「빈녀양모(貧女養母)」편에 실려 전한다.
『삼국사기』 권 48 「열전」 제8 「효녀 지은」편에 수록된 이야기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효녀 지은은 오늘날 경주 지역에 사는 백성인 연권(連權)의 딸인데,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홀어머니를 모시면서 나이 32세가 되도록 결혼을 하지 않고 오로지 어머니를 모시는 일에만 열중하였다. 그러나 집안이 너무 가난하여 품팔이나 구걸을 해도 어머니를 봉양하기 어려웠고, 결국 지은은 쌀 10여 석에 자신을 팔아 부잣집의 종이 되었다. 어머니에게 이 사실을 숨기던 지은은 사실을 알아챈 어머니가 절망하여 울부짖자 함께 울었다. 지나가던 효종랑(孝宗郎)이 사연을 듣고 효성에 감복하여 곡식 100섬과 옷을 보내고 몸값을 갚아 효녀 지은의 신분을 양민으로 되살려 주었다. 소식을 들은 그의 낭도들도 각각 곡식을 보냈으며, 왕도 이를 알고 곡식 500섬과 집을 하사하였다. 왕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부역을 면제해 주었으며, 곡식이 많아져 도둑이 들까 염려하여 군사들을 보내 집을 지키게 하였다. 또한 지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그가 사는 마을을 '효양방(孝養坊)'으로 칭하고 그녀의 미담을 널리 알렸으며, 효종랑의 행동도 치하하여 자신의 형인 헌강왕의 딸과 혼인하게 해 주었다.
『삼국유사』 권 5 「효선」 제9 「빈녀양모」편에 실린 이야기에서는 효종랑이 포석정(鮑石亭)에 나가 놀다가 문하생들에게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팔아 어머니를 봉양한 한 효녀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것으로 그려진다. 『삼국유사』에 수록된 이야기는 『삼국사기』에 수록된 효녀 지은의 이야기와 거의 같다. 다만, 효종랑이 직접 모녀의 통곡 장면을 목격하지 않고 이를 문하생들에게 전해 듣는 것, 사연을 전해 듣고 하사품을 내린 왕이 진성여왕인 것, 그리고 효녀의 집이 나중에 '양존사(兩尊寺)'라는 절이 된 것만 다르다.
효녀 지은의 이야기는 자신의 몸을 팔아 부모를 봉양한 효행담의 전형적인 형태를 보여준다. 이와 같은 효행담에서는 자신의 몸을 파는 매신(賣身) 모티프가 서사 전개의 핵심 사건을 구성하는데, 이 때문에 희생의 맥락에서 주제를 탐색하기도 한다. 자신의 몸을 던져 부모를 봉양하는 효행의 서사라는 점에서 조선 후기 고소설 「심청전(沈淸傳)」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설화로 인식되기도 했다. 『삼국유사』 소재 이야기의 경우 서사 말미에 '양존사'라는 절의 창건 유래담이 덧붙어 있어 사찰(寺刹) 연기(緣起) 설화의 한 유형으로 간주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