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31본산이 정해진 때에는 전등사(傳燈寺)의 말사였다.
창건연대 및 창건자는 미상이나 조선시대 정종의 능인 후릉(厚陵)의 조포사(造泡寺)였다. 1683년(숙종 9)에 건립된 흥교비에 의하면 정종의 비인 정안왕후(定安王后)의 원당(願堂)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이숭인(李崇仁)의 문집에는 이색(李穡)·백문보(白文寶) 등이 이 절을 대상으로 지은 시가 전하는데, 이를 통하여 볼 때 이 절이 고려시대에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1410년(태종 10)에는 태종이 공조판서 박자청(朴子靑)으로 하여금 이 절에 있던 탑을 연경사(衍慶寺)로 옮기게 하였는데, 서울의 원각사탑과 높이·너비·양식이 거의 동일하였다고 하나, 1919년을 전후하여 연경사 강원(講院)의 아동들 실수로 파괴되었다고 한다.
1799년(정조 23) 민상대사(敏尙大師)가 법당·승당·노전(爐殿)·대루(大樓)·선당 등을 중수하였고, 1880년(고종 17) 인암대사(仁庵大師)가 지방민들의 시주를 얻어 퇴락한 당우들을 중수하였다. 또한, 1937년에는 완실(完實)이 중건하였다. 그러나 이 절의 당시 당우는 전래되지 않고 있으며, 『사탑고적고(寺塔古蹟攷)』에 의하면 최전성기의 당우 터였던 동서 약 40칸, 남북 약 60칸의 석단이 남아 있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