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백제본기(百濟本紀)·신라본기(新羅本紀)에는 말갈이 백제와 신라를 자주 침입해 약탈한 것으로 적혀 있는데, 이것은 진짜말갈이 아닌 거짓말갈이라고 한 견해이다.
원래 말갈은 중국 사람들이 6∼9세기에 중국 동북쪽에 거주하던 미개한 이민족을 통틀어 일컫던 이름이다. 7세기에 편찬된『북제서(北齊書)』무성제기(武成帝紀) 하청(河淸) 2년(563)조에 말갈이 처음 나오며 수(隋)나라와 당(唐)나라에서 많이 불리어졌다. 다만 중국 왕조마다 동북쪽의 이민족은 제각기 다르게 불렸다. 춘추전국시대에는 숙신(肅愼), 식신(息愼)이라 불렸고, 한(漢)나라부터 위(魏)․촉(蜀)․오(吳)의 삼국시대에 이르기까지는 읍루(挹婁)라고 하였으며, 삼국을 통일한 진(晉)나라부터 남북조시대까지는 물길(勿吉)이라 불렸다. 그리고 수나라와 당나라 때에는 말갈이라고 불렸으며, 요(遼)나라 때부터는 여진(女眞)이라 부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6세기에 처음 보이는 말갈이라는 이름이『삼국사기』에는 1세기에 이미 백제와 신라를 자주 침략한 이웃으로 적혀 있다. 따라서『삼국사기』의 말갈이 중국 역사서에 자주 나오는 말갈과 같은 민족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정약용(丁若鏞)은『삼국사기』에 실린 말갈 기사는 마치 몽고가 당나라를 침범했다는 것과 같다고 하면서,『삼국사기』의 말갈은 거짓말갈〔僞靺鞨〕로서 동옥저(東沃沮)의 예인(濊人), 즉 불내예(不耐濊)를 가리킨다고 하였다. 불내예는 흔히 일컫는 동예(東濊)와 같은 존재로, 함경남도 남부와 강원도 북부에 걸쳐서 거주하였던 사람들이다.
정약용의 견해는 그 뒤 한치윤(韓致奫)이 그대로 이어받았으며, 일본인 학자 츠다 소우키치〔津田左右吉〕, 도리야마 키이치〔鳥山喜一〕 등도 거의 같은 견해를 밝혔다. 신채호(申采浩)도 낙랑과 관련된 말갈은 예라고 하였다. 최근에는 정약용의 견해에 따라『삼국사기』의 말갈은 동예를 가리킨다고 한 뒤, 신라와 당나라의 외교 과정에서 신라와 불편한 관계였던 동예의 이름이 잘못 알려졌고 그 영향이 역사 기록에도 소급되었을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