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역사학자 이노우에 히데오〔井上秀雄〕의 독특한 견해를 한국고대사학자들이 하나의 학설로 정의한 것이다. 6세기 무렵 가야(加耶)가 멸망한 뒤 백제 사람들이 가야 사람들을 의도적으로 왜인(倭人)이라고 부르면서 일본열도 기나이〔畿內〕지역에 근거를 둔 진짜 왜, 즉 야마토〔大和〕정권의 도움을 받으려 했다는 해석이다.
이노우에 히데오는 4세기 후반에 왜의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로 군사를 보내 그곳을 식민지로 삼았다는 이른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을 잘못된 학설이라고 단정하였다. 당시 야마토 정권이 일본열도의 정치세력들을 다 통제하지도 못해 한반도로 군사를 보낼 처지가 아니었으며 일본․천황 등의 이름도 아직 없었다고 하였다. 그런데도 820년에 편찬된 역사서『일본서기(日本書紀)』에 임나일본부를 설치한 것처럼 쓰인 것은 6세기말에 중국수(隋)나라가 고구려를 침략하자 위협을 느낀 백제가 중국과의 외교뿐 아니라 야마토 왜와의 외교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야마토 정권에 호의적인 역사서『백제기(百濟記)』․『백제본기(百濟本記)』를 편찬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중국의 역사서『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 한전(韓傳)에 나오는 왜를 신라와 백제에서는 가라(加羅)제국의 별명으로 이해하였는데,『백제본기』를 지은 사람이 가라제국의 별명인 왜를 일본열도의 왜인과 결부시키고, 이를 다시 야마토 왜의 새로운 나라 이름인 일본과 결부시켰다는 것이다. 따라서『백제기』․『백제본기』의 기사는 마치 4∼6세기에 야마토 정권이 한반도 남부 지역을 침략하고 있는 듯한 인상을 주지만, 이것은 6세기 말 백제의 지배층이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왜를 끌어들이려는 회유정책에서 비롯된 꾸며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