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한란은 기록으로 볼 때, 1775년(영조 51)에 제주목사로 부임했던 신경준(申景濬, 1721∼1781)의 유고에는 “아국 제주독유혜(我國 濟州獨有蕙: 우리나라에서는 제주에서만 일경다화성인 난이 나온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한란에 관한 우리나라 최초의 기록이며, 제주도의 부종휴(夫宗休) 향토식물가에 의하여 1964년 한란 · 자한란 · 청한란 등으로 구분하여 기록된 바 있다.
우리나라의 제주도 일원에 자생하는 한란은 종(種) 자체를 1967년 7월 11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여 자연유산으로서 보호하고 있으며, 2002년 2월 2일에는 서귀포시 상효동 1616번지 일대의 한란 자생지 100,293㎡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였다.
한란은 우리나라의 제주도를 비롯하여 중국 남부지방, 대만, 그리고 일본의 남부지방에 자생하는 난과식물(蘭科植物)로서 심비디움(Cymbidium) 속(屬)에 속한다. 학명은 ‘Cymbidium kanran Makino’이며, 일본의 식물 분류학자인 마키노(牧野)에 의하여 1902년에 처음으로 보고되었다.
한란은 늘푸른잎을 가지고 있으며, 꽃은 10∼11월경에 초록색 · 자주색 · 적색 등으로 핀다. 하나의 꽃대에 여러 송이가 피는 일경다화(一莖多花)성의 혜란(蕙蘭)에 속하는데, 보통 5∼10송이가 달린다. 맑고 은은하게 풍기는 향기는 동양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매혹적인데 늦가을부터 시작하여 초겨울에 걸쳐서 피기 때문에 동란(冬蘭)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제주한란은 꽃의 색깔이나 모양 등 품종이 매우 다양한데 원예적 품종은 1980년 이종석 교수에 의하여 처음으로 구분되었다. 자한란 계통은 설문대 수악(水岳), 자학(紫鶴), 회심(灰心), 장검(長劍), 작설(雀舌), 신례(新禮), 웅비(雄飛), 자일품(紫逸品), 탈(脫), 보라, 여울, 낙조(落照), 군학(群鶴), 자하(紫霞) 등이 있고, 초록색 계통은 대한(大寒), 녹영(綠影), 웅녀(熊女), 탐라(耽羅), 초로(草路), 선학(仙鶴), 고승(高僧), 녹의(綠衣), 추사(秋史), 선록(仙綠), 무희(舞嬉) 등이 있으며, 적색 계통으로는 추광(秋光), 적일문(赤一文), 추일품(秋一品), 한아름, 한샘, 새롬 등이 있다. 혼합색 계통으로는 혜우(蕙雨), 초연(初燕), 아랑, 한밝 등 모두 50품종이 학계에 보고되어 있다.
제주한란 자생지는 한라산 남쪽 경사면에 주로 많이 분포되어 있는데, 서귀포시 도순천과 영천천, 특히 돈네코 지역 주변에 가장 많다. 분포고도는 한라산 남쪽경사면 해발 120m 부근에서 해발 840m 지점까지 자라고 있으나, 300∼600m 사이에 집중되어 있어서 이 지역을 한란 벨트(belt)라고 부른다. 대부분의 한란 자생지는 큰 계곡과 하천변의 좌우 언덕 부위 언저리의 수림지대와 초지(草地)가 시작되는 경계 부분에 많다.
제주한란은 극심한 추위나 더위를 싫어하는 온대남부 기후대의 표식종(標識種)으로서, 자생지에서 견딜 수 있는 최저극치 온도는 -4℃이고 해발고도가 가장 높은 800m 지점에서는 일시적으로 -6℃까지 하강하더라도 살아남는 경우가 있다. 이처럼 기온이 낮아도 견딜 수 있는 이유는 겨울철이 되면 낙엽이 떨어져 지상부를 덮어주고 있거나 한겨울에는 눈이 쌓임으로서 난이 눈속에 묻혀 극심한 추위를 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름철의 최고 기온은 30℃ 이상이 되더라도 자생지는 숲속의 나뭇그늘이나 풀숲에 가려서 비교적 선선한 조건이 된다.
한란이 생육하기에 적당한 온도는 23℃ 전후이며, 공중습도는 70∼80%, 광도는 3,500∼5,000lux 범위에서 가장 잘 자란다. 자생지에서의 광도범위는 400lux부터 10,000lux 사이이다.
자생지의 지표층에는 낙엽이 쌓여 있고 낙엽층 아래쪽 10㎝ 깊이부터 본래의 토양이 나타나는데, 거의가 진흙에 가까운 성질의 화산회토(火山灰土)로서 이곳에서 근경(根莖)이 분포되어 자란다. 뿌리는 통기성이 좋은 부엽층에 뻗어나가며 토양의 산도는 보통 pH5.3 정도가 된다.
자생지 주변에는 상록활엽수인 사스레피나무나 동백나무 · 구실잣밤나무 · 황칠나무 등이 자라고, 침엽수로서는 곰솔과 소나무, 낙엽수목인 서어나무 · 졸참나무 등이 자생지의 상층부를 가려주는 수관(樹冠)을 이루고 있다.
한란자생지 주변 식생(植生)은 한란의 생육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데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광도이며, 기온과 습도, 그리고 토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특히 한란자생지 주위에는 항상 큰 소나무나 곰솔이 자라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한란 자생지를 천연기념물로 지정한 것은 멸종 위기에 놓인 희귀종의 식물로서 관상가치가 높아 남획의 우려가 있고, 자연상태에서는 종자 번식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생육이 매우 더뎌 그대로 방치해둔다면 멸종의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제주도 일원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자생한란 그 자체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예는 이 식물뿐이며 자생지가 집중적으로 분포되어 있는 일정 지역을 자연유산으로 지정하게 된 것은 종(種)의 효율적 보호와 관리 차원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한란에 관하여 학술적인 측면에서 체계적으로 연구가 이루어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이며, 1983년 서울여자대학교의 이종석 교수가 우리나라 최초로 우리나라 자생한란의 특성, 생육환경 및 번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한 이래로 종자의 무균발아법 및 조직배양법을 이용한 대량 번식방법이 확립됨으로서 조직배양 한란이 상업화되기에 이르렀다.
한란의 종자발아법과 근경, 또는 생장점을 이용한 조직배양법이 개발되면서부터 기내(器內)에서 대량번식이 가능해졌기 때문에 자생지에서 남획의 필요성이 없어지게 되었고, 한란 자생지 보호에 크게 기여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