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서악동 돌베개무덤 ( 돌베개무덤)

고대사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굴식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이칭
이칭
경주서악동석침총(慶州西岳洞石枕塚)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 시기의 굴식돌방무덤. 횡혈식석실분.
개설

서악동 돌베개무덤[石枕塚]은 태종무열왕릉이 있는 서악동 고분군(사적, 1964년 지정)의 남쪽에 있는 야트막한 구릉의 남쪽 경사면에 위치한다. 이 고분은 1909년 12월 대한제국 탁지부(度支部)에서 근무한 야츠이 세이치[谷井齊一]에 의해 조사되었다. 이때의 조사에서 경주지역에서 최초로 굴식돌방무덤이 확인되었다. 하지만 돌방[石室]내부만 조사하였고,『조선고적도보(朝鮮古蹟圖譜)』에 사진과 도면만 실렸을 뿐 정식보고서는 나오지 않았다. 유물은 수점 출토되었는데, 현재 일본 동경대학교 조선사연구회실에 소장되어 있다.

내용

서악동 돌베개무덤의 분구 규모는 직경 약 21.1m, 높이 약 7m이고, 평면형태는 원형이다. 둘레돌[護石]은 확인되지 않았는데, 이 시기에 조영된 다른 고분들의 사례로 볼 때, 둘레돌이 설치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분구의 중앙부에 굴식돌방[橫穴式石室]이 설치되었다. 봉분은 돌방의 축조와 병행하여 쌓아올렸는데, 돌방의 천장돌[天障石]위에는 11㎝ 두께의 모래층과 그 위에 14㎝ 두께의 깬돌[割石]층이 있고, 그 위에 3.64m 두께의 흙을 쌓아올려 완성하였다.

돌방은 평면형태가 횡장방형으로서 길이보다 너비가 길고, 널길[羨道]은 중앙에 마련되었다. 돌방의 규모는 길이 2.44m, 너비 4.92m, 높이 2.39m이다. 돌방은 깬 화강암을 사용하여 위로 가면서 안으로 기울게 쌓았는데, 천장은 큰 돌 3매를 덮었다. 천장과 벽면 내부는 백회를 발랐다. 돌방 바닥에는 모래를 깔고 그 위에 백회를 깔았다. 돌방의 안쪽 벽에 붙여서 너비 방향으로 주검받침[屍床]을 설치하였다. 주검받침은 길이 106㎝, 높이 18㎝인데, 위에는 모래를 깔았고, 깬돌으로 높이 6.1㎝, 너비 9.1㎝의 구획을 하였다. 주검받침 위의 남쪽에는 돌을 깎아 만든 머리받침대가 놓여져 있고, 그 반대쪽에는 ‘방(匚)’자 모양으로 납작한 돌을 세우고 회를 발라 고정하였는데, 피장자의 발을 놓은 곳이다. 이 고분은 신라 왕경의 무덤들 중 베개[頭枕]와 발받침[足座]이 갖추어진 가장 빠른 시기의 굴식돌방무덤이다. 널길은 길이 3.64m, 너비 1.48m, 높이 1.55m이다. 같은 시기 영남 서남부지역의 굴식돌방에 비하면, 널길 길이가 매우 길고, 영주 순흥 읍내리벽화고분, 어숙지술간묘 등 경상북도 북부지역에 분포하는 굴식돌방무덤의 널길 길이와 유사하다. 널길 입구에 편평한 깬돌 1매를 세우고 그 뒤에 깬돌을 채워넣어 막았다.

돌방의 주검받침 위에서 항아리와 뚜껑 등 여러 점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뚜껑에는 삼각집선문(三角集線文)과 반원점문(半圓點文)이 새겨져 있다.

의의와 평가

서악동 돌베개무덤은 보문리부부총, 동천동 와총 등과 더불어 신라 왕경에서 가장 이른 시기의 굴식돌방무덤이며, 6세기에 말에 조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신라 왕경의 지배층 묘제가 돌무지덧널무덤에서 굴식돌방무덤으로 전환한 이후 신라 묘제의 양상을 보여주는 자료로서 신라 묘제 및 매장관념의 변화를 알려주는 중요한 고분이다.

이 고분은 치석한 벽석의 사용, 벽면 회미장, 정교하게 가공한 돌베개의 사용, 널길에 문틀시설의 설치 등 신라 최고지배층의 매장 형식이 완비된 모습을 보이는데, 7세기 이후 신라 왕경 최고지배층의 돌방 형식의 조형이 되었다. 또한 여주 매룡리 제2·8호분과 포항 대련리고분군에서 확인된 굴식돌방무덤의 계통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신라 중앙정부의 지방통치 일면을 보여주는 고분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신라고분 기초학술조사연구』Ⅲ 문헌·고고자료(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2007)
「경주 서악동 석침총 발굴조사와 그 의의」(차순철,『문물연구』10, 동아시아문물연구학술연구재단, 2006)
「西岳里石枕塚」(朝鮮總督府,『朝鮮古蹟圖譜』3, 1916)
집필자
홍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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