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오금리 고분군 ( )

고대사
유적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이칭
이칭
오금리고분군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강동면에 있는 삼국시대 신라의 구덩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
개설

오금리고분군은 호명리·모서리·오금리의 경계를 이루는 해발 223.3m 높이의 삼각점에서 형산강의 지류인 왕산천으로 뻗은 해발 45∼80m의 능선 일대에 위치하며, 고분군의 규모는 69,420㎡이다. 2001∼2002년에 걸쳐 실시한 지표조사에서 124기의 고분이 확인되었고, 도굴이 심하게 되어 훼손된 고분도 다수 있었다. 구릉의 능선 끝자락의 정상부 일대에 직경 10∼13m 내외의 봉토분이 분포하고 경사면에는 봉분 직경이 2∼4m의 소형분들이 분포한다. 봉토분이 밀집한 구릉의 북쪽에 위치한 제1호분 1기가 발굴조사되었다.

내용

오금리고분군은 단 1기만 조사되어 이 고분군의 전체 내용을 파악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지표조사와 제1호분의 조사 내용을 고려할 때, 고분군을 이루는 주요 묘제는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으로 추정된다.

조사된 제1호분은 분구의 평면형태가 타원형이고, 직경 16m 내외, 높이 90㎝∼1.7m 내외이다. 분구의 가장자리를 따라 둘레돌〔護石〕이 설치되었다. 경사가 높은 분구의 뒤쪽에는 반원형의 도랑〔周溝〕이 돌려져 있다. 도랑의 북동쪽에는 제사에 사용한 큰항아리 1점과 아가리조각〔口緣部片〕, 바리모양그릇받침, 굽다리접시 등의 토기가 출토되었다.

분구 중앙에는 장축방향이 북동-남서방향인 구덩식돌덧널무덤 1기가 위치하고 서쪽에 또 1기가 자리잡고 있다. 중앙에 있는 구덩식돌덧널무덤은 봉분과 동시에 축조되었고, 서쪽의 것은 봉분을 파고 설치되었다. 중앙에 위치한 돌덧널의 규모는 길이 410㎝, 너비 110㎝, 깊이 120㎝이고, 평면형태는 세장방형이다. 돌덧널은 냇돌을 사용하여 네 벽을 쌓았다. 돌덧널 바닥은 생토면을 평탄하게 고른 후, 중앙부에만 잔자갈을 깔아 널받침〔棺臺〕를 만들었는데, 널받침 규모는 길이 150㎝, 너비 110㎝이다. 껴묻거리〔副葬品〕는 북쪽과 남쪽에 치우쳐 토기와 철기 등 86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는데, 발걸이·재갈·띠고리〔鉸具〕등의 말갖춤〔馬具〕과 은제칼집장식 등도 포함되었다.

봉분의 서쪽에 위치한 무덤의 돌덧널은 길이 385㎝, 너비 70㎝, 깊이 45㎝인데, 돌덧널 윗부분이 파괴되었고, 뚜껑돌은 남아 있지 않았으며, 무덤 내부도 도굴된 상태였다.

의의와 평가

오금리고분군은 경주 외곽 지역에 조영된 중·소형 신라고분으로 이루어져 있어 외곽지역의 묘제를 파악할 수 있는 고분군으로서 조성시기는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으로 편년된다. 이 고분군보다 경주에 가까운 안계리고분군에는 신라 중앙 지배층의 묘제인 돌무지덧널무덤이 나타나지만, 이 고분군에서는 구덩식돌덧널무덤만이 조영되었다. 이를 통해 오금리고분군은 돌무지덧널무덤의 분포 한계 및 구덩식돌덧널무덤로 이루어진 여타 고분군과의 관계를 구명할 수 있는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된다.

참고문헌

『경주 오금리고분군』(중앙문화재연구원·경주시, 2002)
집필자
홍보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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