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업사명 청동 향로 ( )

목차
공예
유물
문화재
불교 의식구의 하나인 고려시대 향로.
목차
정의
불교 의식구의 하나인 고려시대 향로.
내용

2004년 보물로 지정되었다. 봉업사지(奉業寺址) 출토 청동향로는 통일신라의 거향로에서 고려시대의 향완으로 이행하는 과도기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이 향로는 대부(臺部)와 노신(爐身), 뚜껑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향로의 대부는 원형 받침 아래에 원반형 테를 두르고 그 아래에 말굽형의 3개의 다리를 부착하였다. 이처럼 향로의 받침 아래에 다시 별도의 받침을 두는 것은 통일신라시대 향로의 전통을 계승한 것으로 연곡사 동부도와 양양 서림사지 석조비로자나불상 대좌에 새겨진 향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국립전주박물관과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소장 청동향로도 이 향로의 대부와 유사하다. 이 향로의 노신과 받침은 원통형 간주로 연결되어 있는데, 이와 같은 모습은 초기 향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주발 형태의 노신은 구연에서 저부로 가면서 완만한 곡선을 이루고 있고, 뚜껑을 놓기 위하여 구연을 짧게 하였다. 이와 같은 노신의 구연은 전이 넓게 형성된 향완과는 다른 모습이다. 노신의 중앙에는 한 줄의 굵은 융기선을 둘렀을 뿐 문양은 없다.

반원형의 뚜껑에는 구름과 두 개의 원으로 구성된 연공을 세 곳에 뚫어 놓았다. 뚜껑의 정상에는 연화좌를 만들고 그 위에 보개와 화염보주를 장식하였다. 향로의 뚜껑에 화염보주를 표현한 것은 통일신라시대의 작품인 홍천 물걸리와 양양 서림사지 석조비로자나불좌상 대좌에 새겨진 향로에서도 확인할 수 있어 통일신라의 전통이 이 향로에 반영된 것을 알 수 있다.

봉업사지 출토 청동향로는 대부와 노신, 뚜껑을 통해 통일신라의 전통을 계승하여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 향로에 보이던 모습은 부분적인 변화를 거쳐 고려시대 향완으로 이행하는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 향로의 제작 시기는 11세기 전반 경으로 추정된다.

특히 이 향로의 뚜껑에는 점을 찍어 이은 각명(刻銘)으로 ‘봉업사삼중대사원균(?)(奉業寺三重大師元均(?))’을, 그리고 받침의 표면에는 ‘중이십육근(重卄六斤)’이라는 간략한 명문이 새겨져 있어 봉업사의 삼중대사였던 원균스님이 제작에 참여하였고, 20근의 동을 사용하여 제작한 것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한국 고대의 금속공예』(이난영,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2012)
『경기문화재총람: 국가지정편2』(경기도, 2006)
문화재청(www.cha.go.kr)
집필자
최응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