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1115년(예종 10) 10월 진봉사(進奉使)로서 요(遼)의 천흥절(天興節)을 하례하기 위해 파견되었다. 이때 절일사(節日使) 윤언순(尹彦純), 하정사(賀正使) 이덕윤(李德允) 등이 함께 갔다.
당시 금(金)이 요에 전쟁을 일으켜 요나라로 통하는 도로가 두절되었다. 또한 요나라의 발해유민 출신 고영창(高永昌)이 본국을 배반하고 동경(東京: 遼陽)을 근거지로 삼아 대발해국(大渤海國)을 세웠다. 서방 등은 고영창에게 구금당하고 그의 협박에 못 이겨 고려의 국서를 고영창에게 바치고 황제로 받들었다.
한편, 서방 등의 귀국이 늦어지자 고려에서는 그 이듬해 윤정월에 비서교서랑(秘書校書郎) 정양직(鄭良稷)을 보내어 그 사정을 알아오게 하였다. 1116년(예종 11) 3월 귀국한 뒤에 서방은 국서를 고영창에게 바친 일로 인하여 탄핵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