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하지 않다. 시거운은 거란의 제2차 침입(1010(현종 1)∼1011(현종 2)) 때 활약한 인물이다. 1010년(현종 원년) 11월에 거란의 성종이 직접 40만 대군을 이끌고 고려를 침입하자, 고려에서는 강조(康兆)가 30만 대군을 이끌고 통주(通州, 평안북도 선천군) 삼수채에서 방어했지만 패배하여 포로가 되었다. 거란에서는 포로로 붙잡은 노진(盧戩)과 합문사(閤門使) 마수(馬壽)를 시켜 격서(檄書)를 가지고 통주(通州, 현재의 평안북도 선천군)에 이르러 항복하기를 권유하였더니, 성 안의 사람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이때 판관(判官) 시거운은 방어사(防禦使) 이원구(李元龜), 부사(副使) 최탁(崔卓), 대장군(大將軍) 채온겸(蔡溫謙) 등과 함께 성문을 굳게 닫고 지켜 적을 물리쳤다. 이에 통주 사람들의 마음이 마침내 통일되어 거란군에 대한 지연전을 수행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