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이연소(李延紹)는 최씨무인정권(崔氏武人政權) 시대에 군인(軍人)으로 입신(立身)하여 1258년(고종 45) 초반 신의군(神義軍) 지유낭장·섭낭장(指諭郎將·攝郞將)에 이르렀다. 이연소는 신의군 도령낭장(都領郎將) 박희실(朴希實)과 함께 대사성(大司成) 유경(柳璥), 별장(別將) 김인준(金仁俊, 이후 金俊으로 改名)에게 최씨무인정권의 4대 집권자인 최의(崔竩)를 제거하기를 권유하였다. 같은 해 3월 26일(丙子) 무오정변(戊午政變) 때 유경·김인준 등과 더불어 최의를 죽이고 왕정복고(王政復古)를 이룩하였다. 이로써 고종은 같은 달 29일(己卯) 이연소 등 공신들을 거느리고 강안전(康安殿)에서 새로 즉위하는 것과 같은 의식(儀式)을 거행하였다. 이어서 4월 1일(庚辰) 유경·김인준·박희실 등과 함께 위사공신(衛社功臣)에 책봉되었는데, 이때 위사공신 제4위에 올랐다.
1259년(고종 46) 10월 장군으로 승진하였으며, 이후 이인환(李仁桓)으로 이름을 고쳤다. 1262년(원종 3) 10월 6일 공신당(功臣堂)이 완공되자, 상장군(上將軍)으로서 다른 위사공신들과 함께 도형(圖形)이 그려지는 영예를 누렸다. 이후의 행적은 찾아지지 않는다.
1258년(고종 45) 4월 1일 위사공신(衛社功臣) 제4위에 책봉되었고, 1262년(원종 3) 10월 6일 벽상공신(壁上功臣)으로서 공신당 벽상에 도형이 그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