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와 출신지는 자세히 알 수 없다. 고려무인정권 말기 경상도에 안찰사(按察使)로 파견되었다.
1270년(원종 11) 2월 25일(乙未) 임연이 죽자, 임연의 아들 임유무(林惟茂)가 교정별감(敎定別監)에 임명되었다. 같은 해 5월 원종이 원나라에서 귀국 길에 올라 출륙환도(出陸還都, 開京還都)를 명령하자 임유무는 제도(諸道)에 수로방호사(水路防護使: 水路防護別監), 산성별감(山城別監: 山城防護別監) 및 야별초(夜別抄)를 분견(分遣)하여 몽고에 대해 재항전을 다짐하였다. 임유무가 보낸 야별초는 경상도에 이르러 백성을 독촉하여 여러 섬에 입보(入保)케 하였다.
이때 경상도 안찰사 최간은 동경부유수(東京副留守) 주열(朱悅), 판관(判官) 엄수안(嚴守安)과 함께 야별초를 붙잡아 금주(金州)에 가두었다. 최간은 원종이 국경에 들어오기를 기다려 사잇길로 왕의 행재소(行在所)에 몸소 찾아갔다. 이러한 최간의 행동을 통해서 최간은 국왕의 출륙환도 명령을 지지하였던 국왕파 문신이었다고 보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