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아버지는 좌우위 중낭장(左右衛中郎將) 최정신(崔正臣)이다. 봉익대부(奉翊大夫) 지밀직사사(知密直司事) 감찰대부(監察大夫) 문한학사승지(文翰學士承旨) 세자원빈(世子元賓) 곽예(郭預)의 딸과 혼인하여 1303년(충렬왕 29) 아들 최재(崔宰)를 낳았다. 최재는 대광(大匡) 완산군(完山君)에 봉해졌다.
성품이 청렴(淸廉)하고 공정함을 스스로 지켰으므로 사람들이 공경하고 두려워하였다. 충렬왕·충선왕·충숙왕 세 임금을 두루 섬겼는데 충선왕이 최득평을 그릇으로 여겨 더욱 중하게 대하였다. 최득평이 대관(臺官: 관리를 감찰하는 관리)에 있으면 기강이 섰고, 형부(刑部)에 있으면 형벌이 간결해졌다고 한다. 김해(金海)·상주(尙州)의 수령과 전라도 안찰사(全羅道按察使)를 역임하였다.
1314년(충숙왕 1) 2월 지밀직사(知密直事) 채홍철(蔡洪哲)을 오도순방계정사(五道巡訪計定使)로 삼아 양전(量田)을 하고 부세를 정할 때 최득평은 민부의랑(民部議郞)으로 판관(判官)이 되어 참여한 바 있다. 벼슬은 통헌대부(通憲大父) 선부전서(選部典書) 상호군(上護軍)에 이르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