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소회 ()

회화
단체
1936년에 개설한 김은호(金殷鎬) 문도 출신 동양화가들의 단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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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36년에 개설한 김은호(金殷鎬) 문도 출신 동양화가들의 단체.
개설

김은호의 낙청헌(絡靑軒) 화실에서 그림을 배운 제자들이 1936년에 결성한 단체로 백윤문(白潤文), 김기창(金基昶), 장우성(張遇聖), 한유동(韓維東), 이유태(李惟台), 조중현(趙重顯), 장운봉(張雲鳳; 뒤에 장덕(張德)으로 개명), 정홍거(鄭弘巨) 등이 참여했다.

설립목적

문도들 간의 친목과 동문전을 목적으로 개설되었으며, 회원들을 대표해서 장우성이 발표한 결의서에는 “화업의 진실한 성취 과정에 있어 더 한층 상호의 면려와 돈독을 꾀하고, 나아가 동양화 본령의 진취, 발양과 예술가로서의 함양을 회복하려는 의도에서 진실로 금란적(金蘭的) 계회(契會)의 필요를 느껴” 1936년 1월 18일 밤, 김은호의 낙청헌 화실에서 탄생했다고 한다. 당시 동양화 현실에 대한 사명감과 전통을 계승하고 발전시키고자 하는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연원 및 변천

‘후소회’라는 명칭은 위당 정인보(鄭寅普)가 지어준 것으로 공자(孔子)의 ‘회사후소(繪事後素)’에서 유래한다. 후소회는 일제 강점기 동양화단에서 채색화를 그린 화가들이 중심이었고, 수묵산수화를 주로 그린 이상범의 청전화숙과 쌍벽을 이루었다.

1936년 10월에 후소회원들의 첫 전람회를 열었는데 이 때 백윤문, 김기창, 장우성, 한유동, 장운봉, 조중현, 이석호(李碩鎬), 조용승(曺龍承), 이유태가 참여했고, 김은호와 변관식이 찬조 작품을 출품했다. 제2회전은 1939년에 개최되었고 정완섭, 김화경(金華慶), 배정례(裵貞禮)가 새로 참여했다. 이후 매년 열린 회원전에는 허민(許珉), 안동숙(安東淑). 김학수(金學洙), 이남호(李南浩), 이팔찬(李八燦) 등이 추가로 참여하여 1943년 제6회전까지 열렸다.

현황

해방 후에는 1950년에 제7회전이 열렸고, 이후 6․25 동란과 어지러운 시대 상황으로 인해 오랫동안 열리지 못하다가 1971년에 제7회전이 열렸다. 1980년대부터 안정적으로 거의 매년 회원전이 열렸고, 1984년부터는 공모전도 병행하여 1990년까지 6회전을 가졌다. 이당 김은호의 1, 2대 제자 및 그와 관계있는 화가들이 중심이 되어 2006년에 창립 70주년을 맞이하는 제35회 회원전이 열렸으며 지금까지 그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단체이다.

현재 이당미술상, 청년작가상 등 수상작가들을 배출하고 있으며 안동숙, 이길범, 오숙환, 오용길 등이 관여하고 있다.

참고문헌

『서화백년』(김은호, 중앙일보사, 1977)
「후소회는 “한국화단의 백두대간이다”」(이규일, 후소회 창립70주년 세미나자료, 2006)
후소회(cafe.daum.net/hooso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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