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마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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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김기창(金基昶)이 1955년에 제작한 군마도 초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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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김기창(金基昶)이 1955년에 제작한 군마도 초기작.
개설

종이 바탕에 수묵채색. 세로 212㎝, 가로 488㎝.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 김기창이 1955년에 제작한 「군마도(群馬圖)」는 4폭 병풍으로, 가로 길이가 5m에 달하는 대작이다. 수묵채색으로 6마리의 말이 질주하듯 원을 그리며 격렬하게 뒤엉켜 있는 모습을 그렸다. 김기창은 1956년 제5회 대한민국미술전람회의 추천작가가 되어 이 「군마도(群馬圖)」를 출품하였다.

김기창은 일제강점기였던 1930년대부터 조선미술전람회에 출품하여 특선을 거듭하면서 주목을 받아왔다. 그러나 해방 직후부터 식민 잔재의 청산이란 시대적 과제 앞에 김기창은 자신의 화풍을 반성하고 새로운 화풍을 시도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군마는 이러한 시대의 과제로 선택되어 1990년대까지 김기창이 거의 평생에 걸쳐 다룬 대표적인 제재 중 하나이다.

내용

김기창은 『나의 사랑과 예술』(정우사, 1993)에서 이 작품이 워낙 대작이었기 때문에 당시 그릴 장소가 없어서 자신의 집 안마당에서 그렸다고 회고했다. 그는 말이 “깨끗한 것을 좋아하고 영리한 동물이며, 우리 인간을 위해 충용을 지니어서 인간과 생사까지 같이하는 훌륭한 동물이며 한번 노하면 하늘 높이 날뛰지만 마음을 너그럽게 지니면 순하기 이를 데 없다. 깨끗한 마음, 영리하고 지혜롭고 용맹스러움, 이런 성격을 우리 인간이 가진 감정 세계로서 화폭에 상징화해 보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어렸을 적에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청각을 잃게 되어 평생 장애인으로 살아야 했던 김기창은 이 「군마도」에서 역동적이고 분방한 필치로 내재된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는 듯하다.

17세에 이당 김은호의 문하에서 그림을 익힌 김기창은 해방 후 식민 잔재의 청산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서 스승 김은호와 함께 한동안 배척당했다. 이 시기에 김기창은 기독교 성화를 그리고 조선의 고화를 연구하는 등 일본화풍을 탈피하려는 노력을 기울였고, 1950년대 초에는 그 결실로 서양화의 입체주의를 가미한 「복덕방」, 「노점」, 「엿장수」 같은 작품들을 발표했다. 「군마도」는 김기창 작품의 새로운 분기점을 이루는 작품으로, 이 때 그는 홍익대학교 미술학과에 출강하였고 국전에 추천작가로 들어가는 등 화단의 중심으로 다시 복귀하게 되었던 것이다.

김기창의 이 「군마도」는 한국조폐공사가 2011년 우표 취미주간 특별우표를 만들 때 전통을 잇는 근대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선정되어 조석진(趙錫晉)의 「산수」, 지운영(池運永)의 「장송낙일(長松落日)」, 채용신의 「운낭자상(雲娘子像)」과 함께 부채꼴 모양의 우표로 제작되기도 했다.

참고문헌

『운보 김기창』I-V(운보 김기창 전작 도록 발간 위원회, API, 1994)
『나의 사랑과 예술』(김기창, 정우사, 1993)
『침묵의 심연에서』(김기창, 법조각, 1988)
『침묵과 함께 예술과 함께』(김기창, 경미문화사, 1978)
『화방여적』(김기창, 학원사, 1967)
집필자
강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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