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박사 ()

고대사
제도
백제에서 기와를 만드는 전문기술자에게 수여했던 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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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백제에서 기와를 만드는 전문기술자에게 수여했던 관직.
연원

백제에서 박사(博士)의 존재가 처음 나타나는 것은 4세기 후반근초고왕대이다. 박사 고흥(高興)이나 박사 왕인(王仁) 등은 유학에 조예가 깊은 한군현계 한인으로서 백제에 이주해 온 인물로 보인다. 고흥이나 왕인이 지녔던 박사의 칭호가 오경박사(五經博士)나 태학박사(太學博士)를 지칭한다고 할 때, 백제는 이미 4세기 후반에 태학과 같은 고등교육기관을 운영하고 있었다. 백제는 국가 발전에 필요한 유학에 정통한 한인계 이주민들을 크게 중용하여 박사제도를 한정적으로 운용하였던 것이다.

백제는 6세기 초에 이르러 박사제도를 국가 행정조직에 편입시켜 그 직능을 보다 세분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박사의 수여 대상자는 종래 학문과 문필에 종사하는 사람에 국한되었지만 특정 기술이 뛰어난 전문기술자들에게까지 확대 적용되었다. 유학과 관련이 있는 오경박사 이외에 역박사(曆博士)·의박사(醫博士)·와박사(瓦博士)·노반박사(露盤博士) 등 전문기술직에 걸쳐 있을 정도로 다양한 직능의 박사가 나타났다. 또한『일본서기(日本書紀)』흠명기(欽明紀) 15년조와 숭준기(崇峻紀) 원년조에서 보듯이 여러 직능을 가진 박사들이 국가의 행정조직에 편입되어 있으면서 백제 16관등 중 제8등인 시덕(施德)과 제9등인 고덕(固德)의 관등의 대우를 받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내용

와박사는 백제시대 6세기 이후에 등장한 기와생산 전문기술자였다. 백제의 수막새는 원형 또는 삼각형의 돌기가 달려 있는 연꽃무늬〔蓮花文〕의 반전수법에서 그 특징을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반전수법은 중국 남조(南朝)의 기와·벽돌제조 기술에서 비롯된 것인데, 백제가 다양한 형식 변화를 통해 독자적인 와당양식을 정형화하게 되었다. 백제의 와당제조 기술은 6세기 중반 이후 신라에 전파되면서 독창적인 신라의 원형돌기식 와당으로 변모하였다. 백제는 588년 야마토정권〔大和政權〕의 실권자였던 소가노우마코〔蘇我馬子〕의 요청에 따라 아스카데라〔飛鳥寺〕를 짓는데 와박사를 비롯한 절을 짓는 장인〔寺工〕, 탑의 노반(露盤)을 만드는 노반박사, 불화를 그리는 화공 등을 파견하였다. 이때 백제의 가람 배치, 기단 건축, 요업기술 등이 왜(倭)에 전해지게 되었다. 특히 와박사의 파견은 일본의 사원 건축에 기와를 처음 사용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으며, 사회적으로 수에끼〔須惠器〕를 만드는 토기기술자를 와공(瓦工)으로 변모시키는 요업 생산공정의 분화를 촉진시켰다. 이로써 백제에서 가장 유행하였던 원형돌기식 및 삼각돌기식의 와당 문양이 향후 일본 와당제조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의의와 평가

백제의 와박사는 국가의 수공업체계에 포함된 존재로서 도공이나 와공을 총 관리하는 역할을 수행하였다. 백제의 기와와 벽돌은 부드럽고 단아한 것이 특징인데, 백제인의 따스하고 부드러운 심성이 와박사의 장인정신을 통해 반영된 결과라 할 수 있다. 특히 백제의 와박사가 만든 기와를 통해백제문화의 국제성과 개방성을 엿볼 수가 있다. 와박사가 왜국에 우수한 와당제조기술을 전파함으로써 동아시아 문화의 교류와 활성화에 이바지하였던 점은 문화사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고문헌

『삼국사기(三國史記)』
『백제의 경제생활』(양기석, 주류성, 2005)
『백제의 와전예술』(김성구, 주류성, 2004)
「백제 박사제도의 운용과 변천」(양기석,『백제문화』49, 2013)
「백제 와박사의 대신라·왜 파견과 제와술의 전파」(조원창,『한국상고사학보』48, 2005)
「백제와박사고」(이다운,『호남고고학보』20, 2004)
「고대의『박사』」(김선민,『일본역사연구』12,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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