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 고산동 10호분 ( )

고대사
유적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흙무지돌방무덤. 봉토석실분.
이칭
이칭
고산동10호무덤, 식물원10호분
정의
북한 평양직할시 대성구역에 있는 삼국시대 고구려의 흙무지돌방무덤. 봉토석실분.
개설

평양 고산동10호분은 당산마을 북쪽에 조성된 약 20여 기에 이르는 고산리고분군에 속한 무덤의 하나이다. 일명 식물원10호분이라고도 한다. 1958년 5월부터 1961년 5월까지 진행된 5차례의 대성구역 고구려고분군 발굴을 통해 무덤구조와 벽화 내용이 확인되었다.

내용

고산동10호분 흙무지의 외형은 방대형이며 무덤의 방향은 서쪽으로 26° 기운 남향이다. 널길과 동서벽에 감(龕)이 달린 앞방, 이음길, 널방〔玄室〕으로 이루어진 두방무덤〔二室墳〕으로 고산동7호분과 무덤방향, 평면구조에서 거의 같으나 파괴의 정도가 더 심하다. 앞방 동쪽 감은 평천장이고 서쪽 감은 꺾음식이다. 앞방과 널방 천장은 파괴되어 그 구조를 알 수 없다. 앞널길의 길이×너비×잔존높이는 각각 1.30m×1.32m×90㎝이고, 뒷널길은 53㎝×97㎝×1.11m, 앞방은 1.20m×1.30m×1.30m, 동쪽 감은 65㎝×1.1m×83㎝, 서쪽 감은 65㎝×1.45m×97㎝, 이음길은 78㎝×1.05m×1.35m, 널방은 3.10m×3.12m×1.20m이다. 벽돌 두 줄을 굄돌로 삼아 문처럼 세운 화강암 판석이 널방 입구를 막고 있었으나 반쯤 파괴된 상태로 발견되었다.

회벽 위에 그림을 그렸으나 회벽이 떨어져나가 널방 남벽 동쪽 벽의 기와집과 춤추는 인물들 정도만 모습을 알아볼 수 있다. 남은 벽화의 제재들로 보아 벽화의 주제는 생활풍속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의의와 평가

평양 고산동10호분은 두 개의 곁방을 지닌 앞방과 바른네모모양〔正方形〕의 널방, 생활풍속 위주의 벽화구성 등으로 보아 그 축조 시기는 5세기 전반으로 추정된다. 이 고분은 생활풍속도 계열의 무덤으로서 고구려 초기 고분벽화의 양상을 이해할 수 있는 주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고 평가된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전문사전-고분편-』(국립문화재연구소, 2010)
『고구려고분벽화의 세계』(전호태, 서울대학교출판부, 2004)
『고구려고분벽화연구』(전호태, 사계절, 2000)
『대성산의 고구려유적』(김일성종합대학고고학 및 민속학강좌, 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1973)
「대성산성무덤떼」(채희국,『유적발굴보고』9집-대성산일대의 고구려유적에 대한 연구-, 사회과학원출판사, 1964)
집필자
전호태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