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촌락문서(新羅村落文書)」에는 촌락의 인구를 남녀 공히 나이에 따라 6개의 연령등급으로 나누어, 남자는 정(丁)·조자(助子)·추자(追子)·소자(小子)·제공(除公)·노공(老公)의 순으로 그 수를 통계해놓았다. 인구를 연령등급으로 나누어 파악한 것은 특정 연령의 사람에게 세(稅)를 징수하기 위해서였다. 노공은 세가 완전 면제되었던 최상의 연령등급으로 여자 연령등급인 노모(老母)에 대응한다. 장유(長幼)와 효(孝)의 유교적 질서를 중시했던 중국사회에서는 예부터 노인은 존경, 우대를 받는 존재였고, 국가에서도 경로의 의식을 행하여 노인을 존중하는 인덕을 베푸는 왕조임을 과시하였다. 이에 노인에 대한 면세, 형벌의 감면, 물품의 하사 등 다양한 우대조치가 행해졌다.
신라도 이미 눌지왕 때부터 남당(南堂)에서 경로의 의식을 베푼 사실이 확인되며, 노인 우대조치가 자주 확인된다. 어느 나이부터 노인인가에 대해서는 시대마다 다른데,『예기(禮記)』에는 60세를 기(耆), 70세를 노(老)라고 부른다고 되어 있다. 수(隋)에서는 60세 이상을 노라 하였는데, 당 이후에도 기본적으로 이를 답습하였다. 그러나 신라에서는 정 위에 제(除)와 노의 두 개 연령등급이 설정되어 있었다. 김유신이 70세가 되자, 노라 하여 궤장(几杖)을 내려준 사실이 있어 신라에서는 제가 60세, 노가 70세 이상일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