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박자 세 도막으로 이루어진 단조의 노래이며, 전주와 간주는 할리우드 갱 영화를 연상시키는 재즈 분위기의 색소폰 선율이 금속 질감의 비트에 맞추어 연주된다.
이 노래는 1950년대 후반에 시작하여 1960년대 초까지 이어온 손석우 중심의 밝고 명랑하고 단정한 스탠더드 팝의 흐름을 탈피하고, 재즈와 블루스 등이 가미된 다소 복잡하고 풍부한 느낌의 스탠더드 팝으로의 방향전환의 계기가 된 노래이다. 이 노래를 주제가로 쓴 영화 「맨발의 청춘」은, 곱게 자란 외교관의 딸과 뒷골목 범죄단의 말단 조직원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선풍적인 인기를 모았다. 1960년대 초의 가부장제적 가족의 복원을 그리는 건전한 영화의 흐름을 뒤엎은 이 영화는, 미국의 제임스 딘 영화나 일본의 태양족 영화의 영향을 받은 ‘청춘영화’ 붐을 일으키며 신성일 · 엄앵란 콤비를 최고의 스타로 만들었다. 대중가요계에서도 이 노래를 계기로 손석우의 명랑하고 단순한 음악의 유행이 저물고, 재즈의 어둡고 향락적인 분위기를 머금은 이봉조와, 화려하게 아름다운 비극성을 지닌 길옥윤 등의 작품이 유행하는 1960년대 말까지의 흐름이 만들어진다.
가사에서는 트르토가 지닌 패배주의적이고 소극적인 신파적 정서와는 달리, ‘눈물도 한숨도 나 혼자 씹어 삼키며’, ‘거리의 자식이라 욕하지 마라’에서와 같이 고통스러운 상황을 의지로 돌파해가는 남성적인 분위기가 돋보인다. 이러한 분위기의 노래는 이후 같은 창작자에 의해 만들어지고 남일해가 부른 「맨발로 뛰어라」 등으로 이어진다.
부드러우면서도 중저음이 탁성인 가수 최희준은, 손석우가 지은 「내 사랑 쥬리안」이나 「우리 애인은 올드미스」에서와 같은 밝고 깨끗한 이미지의 가창을 벗고, 재즈적인 어두운 분위기와 남성적 에너지를 표현하면서도 절제감 있는 가창을 보여주었다. 이후 「나는 곰이다」, 「폭풍의 사나이」 등 비슷한 분위기의 노래를 계속 부르게 되는데, 이 노래는 그의 세련되고 중후한 남성적 분위기를 드러내는 노래의 시발점이 되었다. 영화와 노래에서 모두 히트한 「맨발의 청춘」은, 1990년대에도 같은 제목의 노래가 만들어질 정도로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었다.
「맨발의 청춘」은 같은 해 이미자가 부른 「동백아가씨」와 함께 1960년대 초의 건전하고 명랑한 대중가요의 흐름을 깬 두 가지 흐름 중 하나라 할 수 있다. 이 노래들이 나온 1964년은 박정희 정권의 군정기가 끝나고 민정이 이루어진 실질적인 첫 해였으며, 이 두 노래의 유행은 1960년대 초에 다소 과도하게 부푼 서양적 근대화에 대한 낙관과 건전하고 명랑한 계몽적 태도에 대한 대중의 동의가 다소 꺾이기 시작했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