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조 명인 ( )

한성기
한성기
국악
개념
전통적인 음악어법으로 산조 창작에 기여한 기악 음악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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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전통적인 음악어법으로 산조 창작에 기여한 기악 음악가.
개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전반기 동안 산조로 일가를 이룬 기악 음악가를 일컫는 말로, 특정 산조 유파의 창시자나 중시조를 말한다. 전통적인 악기로 산조를 만든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새로운 악기로 산조를 만든 경우도 이에 포함된다. 후자의 경우 전통적인 음악 어법을 벗어나지 않는 경우로 한정된다.

연원 및 변천

산조는 19세기 말에 만들어져 늦어도 1930년대에는 형식적 완성을 본 음악 갈래이다. 음악 산조의 형식은 느린 진양조 장단으로부터 시작하여 중모리, 중중모리, 자진모리, 휘모리, 단모리 장단 순으로 점점 빨라지는 장단연속체를 구성하는 것이다. 중중모리 이후에 엇모리가 추가되기도 한다. 산조는 단순한 구조로 된 즉흥음악으로 만들어지기도 하지만, 정교하게 조성을 운용함으로써 고도의 형식미를 보이기도 한다. 가야금 산조를 시작으로 여러 악기의 산조가 만들어졌다. 현재는 가야금, 거문고, 대금, 해금, 피리, 아쟁, 양금, 태평소 등과 같은 전통악기는 물론이고 철가야금, 철현금 등의 개량악기를 위한 산조가 있으며 기타나 피아노 같은 양악기를 위한 산조도 있다. 산조 명인이란 이상의 악기들의 산조를 처음으로 만들었거나, 그것으로부터 비롯하여 창조적 개성으로 새로운 계파를 탄생시킨 음악가를 말한다. 계파를 만든 경우는 “○○○류”라고 말한다.

악기 별로 계파의 시조나 중시조의 활동 연대는 다르다. 가야금 산조 명인이 등장한 시기가 가장 이르고, 양금, 태평소 및 개량악기나 양악기 산조의 경우는 상대적으로 늦다. 따라서 산조 명인은 19세기 말부터 20세기 후반까지 거론될 수 있다. 단, 현대음악 갈래에서 “○○산조”라는 제목의 창작곡이 만들어지기도 하는데, 이 경우 작품의 작곡자가 산조의 창시자나 중시조로 여겨지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현대음악 작품에서는 전통적인 음악 어법보다는 현대의 음악 어법이 사용되고 있고, 작곡자가 직접 작품을 연주하지도 않기 때문에 산조명인이라고 하지 않는다.

내용

산조 창작의 역사가 가장 오래 되었고 경쟁 역시 가장 심했던 분야가 가야금 산조 부문이었다. 따라서 세대별, 유파별로 창조적 개성을 보였던 명인의 수도 가장 많다. 가야금 산조 명인의 세대는 연대기적으로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음악 전승과 활동 양상 그리고 음악 구조로서 구별된다. 가야금 산조를 중심으로 산조명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제1세대의 명인은 전남제, 전북제, 충청제로 구별되며 전남제 명인으로는 김창조, 한숙구, 유성천이 있고, 전북제 명인으로는 박한용, 이영채, 박학순이 있으며, 충청제 명인으로는 박팔괘, 심정순이 있다. 가야금 산조 1세대 명인들의 경우 전라도 계통의 음악가들은 대부분이 자신들의 근거지 주변에서 활동했지만, 김창조(1856∼1919년)의 경우는 달랐다. 김창조는 전남 영암 출신이었지만 자신의 근거지 주변에서는 물론이고 경남 진주와 전북 전주 등지로 다니면서 활달히 음악활동을 전개했다. 김창조는 1910년대 중반 이후로 경남 지역, 특히 진주 기생조합에서 사범으로 활동하면서 다수의 경상도 출신 여성음악가들에게 산조를 가르쳤다. 그들 중 일부가 상경하여 20세기 초 극장에서 명성을 떨친 것으로 보인다. 또한 김창조는 여러 지역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남성 음악가들을 가르쳤는데, 그들이 1920년대 말 이후로 대거 상경하여 전국적으로 명성을 떨치며 가야금 산조 제2세대 명인으로 자리를 잡았다. 제2세대 가야금 산조 명인으로는 김창조의 제자들이 압도적으로 많다. 김창조의 제자들은 1920년대 말 이후로 유성기 음반에 산조를 녹음하거나 서울에 있었던 남도음악 근거지, 조선성악연구회를 중심으로 활동했다. 그들 중 가장 선배는안기옥이었고 이후로 정남희, 한성기, 강태홍, 최옥삼, 김죽파, 함동정월, 김병호 등이 있었다. 이들은 김창조 산조의 뛰어난 형식미를 기반으로 개성적인 음악을 발전시킴으로써 각각 새로운 유파의 중시조가 되었다.

한편, 전라남도 출신의 제1세대 명인으로 김창조와 필적할만한 음악성을 가진 산조명인으로 한숙구가 꼽힌다. 한숙구(생몰년 미상, 김창조보다 연상)는 뛰어난 음악성을 갖고 있었고 주변에 널리 알려졌지만, 김창조처럼 다양한 지역에서 활동하지는 않았다. 이 때문에 제자의 수나 그들의 활동상 역시 한정적이다. 그러나 그의 음악적 지향은 김창조의 형식미와는 상대되는 자율미를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제자로 알려진 제2세대 명인으로는 한수동, 정남옥, 안기옥 등이 있다. 한수동은 한숙구의 아들로 가야금 및 여타 전통악기의 명인이었고 양악기도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는 즉흥음악의 명인이었다. 정남옥 역시 인근에서 뛰어난 음악가로 인정받았던 인물이다. 한수동의 음악은 다음 세대로 이어지지 못했고, 정남옥의 산조는 정달영과 서공철로 이어졌다. 이 두 사람 역시 산조 제3세대 명인으로 각각 새로운 유파의 중시조로 이해되고 있다. 안기옥은 산조의 걸출한 제2세대 명인으로 전북제 한숙구의 제자이기도 하지만 전남제 김창조계 산조의 계승자이기도 하다.

전남제 김창조계 및 한숙구계와 같은 전라남도 출신이지만 두 사람과 다른 전승 계통을 형성했던 또 다른 산조 명인이 유성천이다. 유성천의 제자는 유대봉이다. 유성천-유대봉은 전남제 산조 전승에 있어서 시조-중시조의 관계이지만 김창조, 한숙구에 비해 약 한세대 정도 뒤진다.

전라북도 지역의 산조로 1세대에 명인에 해당하는 음악가는 박한용, 이영채, 박학순이다. 박한용은 전라북도 운봉 출신으로 지역에서 활동했지만, 그의 제자 김종기는 1930년대에 상경하여 출중한 음악성으로 제2세대 산조 명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의 제자 김삼태, 정금례 역시 제3세대 명인으로 인정받은 바 있다. 한편, 전라북도 김제 출신 이영채도 산조의 제1세대 명인인데, 그의 제자로 신관용과 이칠만이 있지만, 이 중 신관용만 제2세대 명인으로 인정받았다. 그의 음악은 제3세대 명인 강순영으로 이어졌다. 전북제 제1세대 명인으로 알려진 박학순은 제2세대 명인인 신쾌동의 스승이다. 신쾌동은 가야금 산조의 명인이었지만 거문고 산조로도 일가를 이루고 사회적으로 성공했기 때문에 박학순계 가야금 산조는 제2세대 명인인 신쾌동에서 전승이 끊겼다.

충청지역의 제1세대 가야금 산조 명인으로는 박팔괘와 심정순이 있다. 전남제 김창조계 산조와 달리 충청지역 산조의 1세대 명인은 충청도 출신이지만 충청도에서 활동하는데 머물지 않고 상경하여 초기 극장과 유성기 음반을 넘나들며 활동하였다. 박팔괘는 충청북도 청주 출신으로 1910년대 전반기에 서울 극장 무대에서 명성을 날렸고, 심정순은 충청남도 서산 출신으로 극장 무대는 물론이고 초기 유성기 음반 시절에 이름을 날렸다. 심정순은 1910년대에 “심정순 일행”을 이끌고 전국 순회공연을 다니며 음악활동을 전개하기도 했다. 이들의 제자인 제2세대 명인으로는 박팔쾌의 제자 박상근과 심정순의 조카인 심상건이 있다. 박상근의 음악은 제3세대 명인 성금련에게 이어졌지만, 성금련은 박상근에게 사사한 이후 다시 안기옥에게 배우면서 음악적 계통을 달리했다. 따라서 박상근의 음악은 전승이 끊겼다. 심정순과 직접적인 제자는 아니지만 혈통상의 근친인 심상건은 유성기 음반에 당대 최고의 산조 녹음들을 남겼다. 심상건은 유성기 음반 시절 당시로서는 이례적으로 세 바탕 이상의 산조 녹음을 남겼으며, 해방 이후로도 국립국악원 사범으로 활동하면서 끊임없이 자신의 산조를 창조적으로 변화시켰다. 심상건은 초절의 기교로 당악(즉 단모리 혹은 세산조시)를 산조의 장단연속체 속에 추가했으며, 전남 혹은 전북제 산조와는 다른 방식의 장단연속체를 구성했으며, 산조에서 경드름과 평조를 가장 다채롭게 활용했고, 만년에는 전남제 김창조계 산조의 구조도 수용했다. 그러나 심상건 명인의 산조는 전승이 끊겼다.

현황

제3세대에 속하는 명인의 활동상과 작고한 연도 등을 종합하면, 명인의 계보는 현재에도 이어진다. 현재 활동하고 있는 동시대 명인은 제4대에 해당하지만 이들의 면면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아직 없다. 반면, 현재 개량악기와 양악기 산조의 명인은 제1, 2세대에 머물고 있다. 예컨대 철가야금과 철현금 산조의 경우 서공철과 김영철이 제1세대 명인이라면, 임경주와 유경화가 제2세대 명인이 된다. 기타 산조에는 신중현이 제1세대 명인이다.

참고문헌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7) 산조』 (이보형, 문화재관리국, 1987)
『무형문화재 (음악)조사보고서 가야금산조』 (이보형, 문화재관리국, 1980)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가야금산조』제94호 (이보형, 문화재관리국, 1972)
『무형문화재 조사보고서 가야금산조』제39호 (박헌봉, 문화재관리국, 1967)
「김창조의 가야금 산조와 후기(근대)산조 전승론」(이보형, 『산조연구』1, 2001)
「심상건의 산조사적 공헌」 (권도희, 『한국음반학』9,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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