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성기생양성소 ()

평양 기생학교 수업 광경
평양 기생학교 수업 광경
국악
단체
1926년에 평양에 설립된 근대적 기생 교육기관.
이칭
이칭
평양기생학교
내용 요약

기성 기생양성소는 1926년에 평양에 설립된 근대적 기생 교육기관이다. 기성이 평양의 옛 이름이기 때문에 평양 기생학교로도 불린다. 기성 기생양성소는 기성 권번의 자매기관이다. 3년 단위로 교육 과정이 구성되었으며 『가곡보감』이라는 교과서가 만들어졌다. 교육 과정은 단계별로 표준화되었고 학생과 교육자 간에 법적·제도적 관계를 유지한다. 전통 가무·예술 과목은 물론 일본어·조선어 등 일반 학교의 교수 과목 등도 있다. 이 양성소를 통해 배출된 기생은 상당수가 전국적으로 활약했다. 대표적으로 당대의 명기가 된 선우일선과 왕수복이 있다.

키워드
정의
1926년에 평양에 설립된 근대적 기생 교육기관.
개설

평양 기생학교로 불리기도 한다. 기성은 평양의 옛 이름이다. 대동강 옆에 있었던 기성기생양성소는 기성권번의 자매기관으로 같은 건물 안에 있는 기생 교육기관이다. 한 명의 기생이 탄생하기까지 매우 엄격한 전문 교육이 이루어졌다.

평양의 경우 1921년 이전까지 기생의 학습은 기생서재(妓生書齋)에서 이루어졌다. 기생서재에서는 기생의 학습이 사적 관계를 통해 이루어지며 교육의 내용 역시 유동적이다. 그러나 기생학교에서는 교육 과정과 평가방식이 표준화되어 있으며 학생과 교육자 간의 관계 역시 법적 · 제도적 관계를 유지한다. 이 점에서 평양 기생학교는 근대적 전문 교육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설립목적

평양에서 기생 교육에 대한 공적 수요가 생겨났고, 이에 체계적인 교육을 실시하기 위해 평양 기생학교가 설립되었다.

연원 및 변천

1921년에 평양기생권번 학예부가 설치되었고, 1926년에는 일본 실업소녀학교의 사례에 따라 기생학교가 탄생했다. 이 과정에서 기생교육에 관한 사회와 교육기관의 공적 관계가 성립하게 되었고, 학생의 교육 과정이 단계별로 표준화되었으며, 『가곡보감』(1928)이라는 교과서가 만들어졌다.

기능과 역할

3년 단위로 교육 과정이 구성되었다. 그 중 각 1년은 3학기제(1학기 4월1일∼8월31일/ 2학기 9월 1일∼12월 31일/ 3학기 1월1일∼3월 31일)로 운영되었다. 당대의 최고 남녀 예술가가 가르쳤고, 여기에 악사 5, 6명이 상주하면서 학생들의 교육용 반주를 맡았다. 교육 공간은 무용실, 가창실, 소극장 등으로 나누어져 있었다. 1930년에 당시 학교의 자산은 약 2만원이었다.

이 기관을 통해 배출된 기생은 평양에서 가장 많이 활동했지만, 상당수는 전국적으로 활약했다. 기성 기생양성소 출신으로 당대의 명기가 된 대표적인 사례가 선우일선과 왕수복 등이다. 이들의 명성은 특정 지역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전 조선에 미쳤다. 이들의 장기는 전통적인 가무 외에도 당시 유행가 및 신민요에 걸칠 정도로 광범위했다. 이처럼 평양 출신 기생들이 다양한 분야에서 성공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전통가무와 외래가무를 균형감 있게 학습시키는 교육프로그램이 있었다. 1934년 당시 교육 프로그램은 다음과 같다.

1학년: 가곡, 서화, 수신, 창가, 조선어, 산술, 국어(일본어)

2학년: 우조, 시조, 가사, 조선어, 산술, 음악, 국어(일본어), 서화, 수신, 창가, 무용

3학년: 가사, 무용, 잡가, 창가, 일본패, 조선어, 국어(일본어), 동서음악, 서화, 수신, 창가

기성기생양성소의 교육프로그램 중 춤 교육은 특히 성공적이었다. 예컨대, 춤의 경우 기본춤으로 승무검무를 익혔고 이를 완수한 학생은 심화과정의 춤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시 세간에서 “춤 잘 추는 평양기생, 노래 잘 하는 남도기생”이라고 할 만큼 평양 기생학교의 춤 교육은 그 효과가 뛰어났다.

의의와 평가

기생양성소는 당대 평양 기생들의 교육에는 물론이고 근대적 전통공연예술 교육의 틀을 제시하는데도 기여했다고 할 수 있다. 평양 기생학교의 교육 과정은 전통 가무의 전문적인 수업과 여러 예술과목(서화, 서양식 무용 등) 그리고 일반 학교의 교수 과목(조선어, 일본어, 창가, 서화, 수신, 가사, 산술 등)으로 나누어지며, 기본기와 심화과정을 구별한다. 즉, 학습 프로그램을 통해 당시 사회적 요구에 일정한 단계에 도달할 수 있도록 하는 점, 당시의 사회적 요구를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는 점 등은 현행 예술교육과도 맞닿아 있다 할 것이다.

참고문헌

『한국근대음악사회사』(권도희, 민속원, 2004).
「평양기생학교 구경」 (기자, 『삼천리』1934. 5)
「서도일색이 모힌 평양기생학교」 (초사, 『삼천리』1930. 7)
『中國朝鮮調査音樂紀行』(田邊尙雄, 音樂之友社, 1970)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권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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