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갈은 말의 주둥이 안 송곳니와 첫째 큰 어금니 사이에 가로로 물리는 재갈쇠, 말의 주둥이에서 빠지지 않도록 주둥이 양쪽으로 튀어나온 재갈쇠의 고리에 끼워 고정하는 재갈멈추개, 재갈쇠와 고삐를 연결하는 고삐이음쇠로 구성된다. 재갈은 재갈멈추개의 고리에 가죽끈을 연결하여 말머리에 장착하며, 이들 가죽끈의 구성을 면계(面繫)라고 한다.
재갈쇠는 재질상 철제와 청동제가 있으며, 연결되는 마디의 수에 따라 이연식(二連式), 삼연식(三連式)으로 구분한다. 특히 철제의 재갈쇠는 제작 기술상 철봉을 ‘S’ 자 모양으로 접어 양쪽 고리 부분은 제외하고 가운데 부분을 꼬는 방법과 단접 방법이 사용되어 계통성을 나타내기도 한다.
재갈멈추개는 형태에 따라 표비(鑣轡), 경판비(鏡板轡), 환판비(環板轡), 원환비(圓環轡) 등으로 분류하며, 표비는 목제 또는 동물뼈나 뿔을, 경판비는 금, 은, 청동 등의 금속 재질을 많이 활용한다.
고삐이음쇠는 고삐의 움직임을 잡는 추(錘)의 역할로 기승용 재갈에 사용되며, 초기국가시대 후기에 본격적으로 채용된다. 구조는 재갈쇠처럼 꼬은 형태, 철봉을 구부린 이조선(二條線)의 형태, 일조선(一條線)의 형태가 있으며, 고삐이음쇠 바깥쪽에 별도의 인수호(引手壺)를 부착하는 경우도 있다.
재갈쇠와 고삐이음쇠는 직접 연결되는 구조가 기본이지만, 대량 생산의 효율성과 경판의 훼손을 방지하고자 각각 별도로 제작한 후 노는고리를 통해 연결하기도 한다.
초기국가시대의 재갈은 재갈쇠와 재갈멈추개로만 구성되며 서북한 지역과 진변한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서북한 지역 고조선 후기의 재갈은 ‘S’ 자 모양 재갈멈추개와 이연식의 재갈쇠가 조합되며, 낙랑군 설치 후 청동제 및 철제의 삼연식 재갈쇠와 다양한 형태의 재갈멈추개가 나타난다.
진 · 변한 지역은 ‘S’ 자 모양 재갈멈추개 위주로 낙랑마구의 영향을 받은 ‘一’ 자 모양이 사용되지만, 재갈쇠는 철제로 꼬은 이연식이 대부분이다.
최근 발굴된 보성 현촌유적 재갈의 경우 재갈멈추개는 없지만 재갈쇠는 꼬지 않은 형태이기 때문에 초기국가시대의 마구는 좀 더 이른 시기에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유입되었던 것으로 이해된다. 이후 낙랑군 지역의 전축분 단계 재갈은 명기(明器)로 부장되어 작아지는 반면, 진 · 변한 지역은 재갈멈추개의 궐수문이 발달하여 과장되는 등 의기화된다.
마한 지역은 최근에서야 아산 공수리와 청주 오송유적에서 확인되며 진 · 변한 지역 재갈과는 형태 및 구조의 차이점이 관찰되어 지역별로 유입과 전개 과정에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삼국시대의 재갈은 고삐이음쇠가 추가되며 원판, 환판, 원환 등 재갈멈추개의 형태가 다양화된다. 또한 경판의 훼손을 방지하고 대량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자 재갈쇠와 고삐이음쇠를 연결하는 노는고리가 개발되며 위계에 따른 재질 및 형태의 변화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형화된다. 이때까지는 분묘유적을 중심으로 확인되며 말 등에 올라탈 수 있는 등자와 안장 및 갑주의 공반을 통해 중장기병의 존재를 알 수 있다.
남북국시대 이후 재갈은 분묘유적보다는 고락산성과 용인 언남리유적 등의 생활유적을 중심으로 확인되며, 원주 법천사지 출토 재갈과 같이 정교한 은입사(銀入絲) 기술로도 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