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민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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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이후 일반사람 및 잡가담당층에 의해 새로 만들어져 불려진 민요풍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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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신민요는 조선 후기 이후에 새로 생긴 민요 및 민요풍의 창작가요이다. 이 용어는 1930년대 유성기 음반에서 ‘유행가’와 함께 갈래 용어로 사용되었다. 일제강점기에 음반 판매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에 편입된 대중가요이다. 기존 민요와 달리 작곡가·작사자가 분명하고 특정 가수의 노래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신민요의 전성기는 1930년대 중반이다. 이 시기 대중들에게 널리 사랑받은 노래로는 〈노들강변〉·〈능수버들〉 등 다수가 있다. 해방 이후에는 민요 명창들의 가창 전승을 통해 〈꽃타령〉·〈진도아리랑〉 등이 전승되었다.

목차
정의
19세기 말 이후 일반사람 및 잡가담당층에 의해 새로 만들어져 불려진 민요풍의 노래.
개설

넓은 범주에서는 ‘19세기 말 이후 일반사람 및 잡가담당층에 의해 새로 만들어져 불려진 민요풍의 노래 전반’을 의미하며 좁은 의미에서는 ‘일제강점기 이후 특정인의 작곡과 작사를 통해 만들어진 민요풍의 대중가요’를 지칭한다. 먼저 넓은 의미의 신민요는 개화기 이후 새로 창작된 민요 전반을 포괄한다. 넓은 의미의 신민요에는 다른 두가지 문화적 맥락이 포함되는데 하나는 19세기 말 이후 만들어진 「경복궁타령」 · 「천안삼거리」 · 「신고산타령」 · 「청준가」 등과 같은 근대요를 가리킨다. 다른 하나는 일제강점기, 특히 1930년대 음반산업을 기반으로 한 자본주의적 생산 및 소비 체계 속에서 유통된 민요풍의 대중가요를 일컫는다. 넓은 의미의 신민요 범주는 이 두가지 다른 맥락을 모두 포함하고 있다. 이에 비해 좁은 의미의 신민요 개념은 일제강점기 유성기 음반에 취입된 민요양식의 대중가요와 그 이후 만들어진 민요풍의 대중가요에 한정된다.

연원 및 변천

신민요의 기원은 조선 말기 생성된 근대요 중에서 잡가담당층에 의해 수용되어 통속화된 민요들, 예컨대 「경복궁타령」 · 「몽금포타령」 · 「평양흥타령」 · 「난봉가」 · 「천안삼거리」 · 「신고산타령」 등에서 찾을 수 있다. 이와 별개로 1930년대 일본음반산업의 식민지 시장 진출에 따른 조선음반 시장이 형성되면서 신민요는 대중가요의 한 갈래로서 발흥하였다. 음반 가사지에 신민요라는 갈래명을 부여받은 최초의 창작곡은 홍난파 작곡의 「방아찧는 색시의 노래」와 「녹슨가락지」이다.

해방 이후 1970년대까지는 남한 대중가요계에서 황정자, 최정자, 김세레나 등의 신민요 가수들에 의해 일제시대 신민요의 일부가 계승되거나 새로 창작되어 불려졌으나 대중가요로서의 신민요는 1980년대 이후에는 거의 소멸하였다. 한편 민요 명창들의 가창전승으로 불려져온 신민요는 민요 레퍼토리의 하나로 편입되어 불려지고 있다. 「노들강변」 · 「태평가」 · 「궁초댕기」 등이 일제시대의 신민요가 통속민요의 레퍼토리로 편입되어 해방이후에 민요명창에 의해 가창되었고 1960년대 이후 창작된 신민요로는 박귀희의 「꽃타령」 · 「뽕따러가세」, 한일섭의 「금강산타령」 · 「동백타령」 등이 있다.

내용

좁은 의미의 신민요는 향토민요 및 통속민요와 비교를 통해 명확해진다. 향토민요가 민중들의 생활을 기반으로 자생한 것이며 생활과 함께 존속하는 비전문적 노래이다. 통속민요는 전문예인 즉 잡가 담당층들이 각 지역에서 전승되던 향토민요나 무가 등을 속화 및 잡가화한 것이다. 이에 비해 신민요는 일제 강점기에 음반에 담아 판매할 목적으로 특정인의 작곡과 작사를 통해 만들어진 민요풍의 대중가요이다. 향토민요와 통속민요는 전통사회의 문화적 맥락에서 생산된 전통 가요이지만 신민요는 자본주의적 생산구조에 편입된 대중가요이다.

신민요라는 용어는 1930년대 유성기 음반에서 ‘유행가’와 함께 갈래 용어의 하나로 사용되었다. 유성기 음반에 신민요라는 갈래 용어를 부여 받은 노래들은 기존 민요와 달리 작곡가와 작사자가 분명하고 유통 과정에서 특정가수의 노래라는 인식이 가능하다. 음악양식적으로는 민요적 음악어법을 가진 것과 가지지 않은 것들이 혼재해 있다. 민요풍으로 되어 있다 하더라도 생산과 유통면에서 대중매체를 통해 다수 대중을 겨냥한 음악 상품으로서 유행가 와 혼융된 양식으로서 양악과 국악적 요소가 섞여진 혼종성(hybridity)을 특징으로 한다.

1930년대 중반은 신민요의 전성기에 속하며 이 시기 널리 대중들에게 사랑받은 노래로는 「노들강변」(신불출 작사, 문호월 작곡), 「처녀총각」(범오 작사, 김준영 작곡), 「꽃을잡고」(김안서 작사, 이면상 작곡), 「능수버들」(왕평 작사, 김교성 작곡), 「조선팔경가」(편월 작사, 형석기 작곡), 「온돌야화」(김다인 작사, 전기현 작곡), 「울산큰애기」(고마부 작사, 이면상 작곡), 「태평연」(남강월 작사, 정사인 작곡), 「꼴망태아리랑」(김성집 작사, 김용환 작곡), 「관서천리」(김능인 작사, 문호월 작곡) 등 다수가 있다.

해방 이후 민요 명창들의 가창전승을 통해 계승된 신민요는 「통영개타령」, 「꽃타령」, 「동백타령」, 「봉화아리랑」, 「진도아리랑」(일제시대 박종기 명인에 의해 창작), 「금강산 타령」 등이 있으며 현재까지도 전통적인 민요 가창 공연에서 불려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대중가요사』(이영미, 시공사, 1998)
『한국가요사』(박찬호, 현암사, 1992)
「일제강점기 신민요의 혼종성 연구」(이소영,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논문,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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