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권번 ()

국악
단체
1935년 한남 · 대항 · 경성 권번을 강제로 통폐합시켜 새롭게 종로에 만든 기생조합.
정의
1935년 한남 · 대항 · 경성 권번을 강제로 통폐합시켜 새롭게 종로에 만든 기생조합.
개설

1930년대 중반에 서울 장안에는 다수의 크고 작은 기생조합이 결성되어 있었다. 이 조합들 중에는 한성권번처럼 기생 조직화의 초기부터 설립된 것도 있었지만, 1910년대 후반 혹은 1920년대 이후로 조직된 여러 권번들, 즉 한남권번·대동권번·조선권번·경성권번·대항권번 등도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35년 7월 경기도 경찰부 보안과에서는 풍기단속과 사무통일이라는 명분을 앞세워 당시 서울에서 경쟁하고 있었던 다섯 권번을 통합하도록 각 서에 지시했다. 그러나 각 권번의 저항에 부딪치면서 당국은 종로서 관할 권번과 본정서에서 관할하는 권번들을 두 개의 거대 권번으로 통폐합한다는 기획을 구체화했다. 그러나 본정서에서 관할했던 두 권번의 통폐합은 실패했고, 종로서에서 관할했던 권번의 통합은 한남권번의 강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결과적으로 성공했다. 즉, 종로서 관할 안에 있었던 한남·대항·경성 권번은 1935년 종로권번으로 통합되었다. 종로권번의 설립에는 요리업자·건설업자·경관 등이 관여했다.

연원 및 변천

종로권번은 1930년대 당시 신생 권번임에도 불구하고 급속도로 성장했다. 설립 후 몇 년 만에 전통 있는 권번이었던 한성권번에 필적할 만한 세를 갖추게 되었다. 그 배경에는 종로권번의 야심찬 기생 학습 체계가 있었다. 1937년부터 종로권번은 낙원정에 부설 기생양성소를 설치했고 여기서 체계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당시 서울서 기생 활동을 하려는 기생들은 3년제 학습프로그램을 이수해야 했는데, 이수 과목은 권번마다 약간씩 달랐다. 종로권번의 가무학습 프로그램과 교수진은 경기잡가에 오영근, 가곡과 조선무용에 황종순, 서도잡가에 김일순, 사교땐스에 기룡, 현금과 양금에 박성재 등이 있었다. 종로권번의 학습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종로권번 출신 기생은 가야금, 외국어, 서화, 사교땐스, 조선무용, 조선구가로 명성을 떨쳤다. 또, 1938년 이후로는 음반회사도 종로권번 출신 기생들의 능력을 주목하고 이들에게 음반 녹음을 의뢰했다.

기능과 역할

종로권번 출신 기생들은 극장에서 조선춤, 서양춤, 노래, 조선전통 가무극, 모더니티를 첨가한 호화 현란한 무용, 춘앵무, 무산향, 승무, 사고무, 검무, 무고, 창작레뷰, 조선민요, 민요딴스 등을 공연하면서 당대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종로권번의 땐스는 흥타령, 조선민요와 같은 전통적인 레퍼토리를 활용한 것은 물론이고 주막풍경, 창공 등과 같은 당대의 창작 공연물을 포괄했다. 나아가 레뷰 즉 당시 유럽 및 일본에서 유행하는 공연형식을 활용하여 삐삐레뷰, 처녀총각, 해군딴스, 애국행진곡 등을 공연했다. 이 때, 당대의 유행가를 적극 활용했다. 종로권번의 레뷰와 서양식 땐스는 당시 3대 권번이었던 한성권번·조선권번과 비교하여 종로권번의 특장 공연 레퍼토리였다고 할 수 있다.

의의와 평가

종로권번은 1935년 일제 경찰에 의해 조선기생의 조직들이 통폐합된 것이었다. 그러나 1937년 교육 프로그램이 마련된 후, 1938년부터는 장안의 개성적인 기생조직으로 인정받았고, 새로운 공연물을 계발하는 집단으로 자리잡았다.

참고문헌

「기생의 가창활동을 통한 근대에의 대응」 (권도희,『한국시가연구』32, 2012)
「20세기 기생의 가무와 조직」 (권도희,『한국음악연구』45, 2009)
「조선가무(朝鮮歌舞)를 이어가는 사람들-기생금석담(妓生今昔譚)」(목금흑(木金黑), 『여성(女性)』1939. 6)
「기생예도개평-조선· 한성· 종로 삼권번(妓生藝道槪評-朝鮮·漢城·鐘路 三券番)」 (기자,『삼천리(三千里)』 1936. 8)
『매일신보』(1935. 7. 10)
집필자
권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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