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철 ()

국악
인물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줄타기」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줄타기명인.
인물/근현대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920년
사망 연도
1988년
출생지
경기도 과천면 갈현리 3번지
정의
해방 이후 국가무형문화재 「줄타기」 전승자로 지정된 예능보유자. 줄타기명인.
개설

전통적인 예인집단의 후예로 줄타기 및 철현금 제작과 산조에서 일가를 이루었다.

생애

김영철은 1920년 경기도 과천면 갈현리 3번지에서 3남매 중 장남으로 태어났고 1988년에 과천시 갈현동에 안장되었다. 김영철은 경기도 과천의 세습무 집안에서 태어났고, 그의 부친 김완근은 거문고의 명인이었다. 그는 작고하기 전까지 가풍을 이어 음악은 물론이고 각종 공연 종목에서 탁월한 재능을 보이면서 활동했다.

활동사항

김영철은 9살에 이웃에 사는 줄광대 김관보의 기예를 보고 줄타기를 학습했고, 1937년(17세)부터 본격적으로 줄타기 공연을 시작한 이후 여러 단체를 거쳐 가며 전국적인 공연활동을 벌였다. 김관보의 제자 임상문, 이정업, 이동안 등과 같은 연희계의 명인과 함께 줄타기 및 땅재주를 공연했다. 해방 전까지 임상문의 아버지 임종원이 운영하던 대동창극단에서 활동했고, 해방 후에는 아리랑여성농악단, 김뻑국 예술단 등의 단체에 속해 있으면서 줄타기 및 여러 공연에 참여했다. 1975년부터 1978년까지 한국민속촌에 정착하여 전속공연을 했고, 1978년 국가무형문화재 줄타기 예능보유자가 되었다. 1988년 작고 후 그의 줄타기는 김대균에게 이어졌다.

김영철은 단체 활동 중 재능 있는 음악가들을 만나면서 그들의 음악을 자연스럽게 익혔고, 한편 부친으로부터 이어받은 음악성을 꾸준히 계발하여 철현금 산조라는 창조적 음악을 탄생시켰다. 해방 후 단체공연 중에 새로운 음색의 악기들이 만들어 지기도 했는데, 예를 들면, 명주실로 된 가야금 외에 철가야금, 명주실로 된 거문고 외에 철현금 등이 그것이다. 이 중 철현금은 김영철이 만든 악기이다. 김영철은 하와이안 기타 연주를 듣고 철현금을 개발했다. 철현금 개발 초기에 김영철은 공연단의 민요 합주나 무용 반주를 주로 했지만, 후기에는 거문고 명인 한갑득과 가야금의 명인 박상근 등과 교유하면서 철현금 산조를 만들었다. 김영철은 철현금으로 명성이 높아졌고, 1977년에는 아세아 레코드에서 장덕화의 반주에 맞춰 철현금 산조를 녹음했다(1978년 1월에 발매). 김영철은 철현금 산조로 제자를 두지 않았지만, 후세대 연주자인 임경주와 유경화 등에 의해 계승, 재현되었다.

상훈과 추모

1978년에 국가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선정되었다.

2009년 11월 11일 오후 2시 경기도 과천시 갈현동 찬우물 광장에 김영철 줄타기 기념비 제막식이 있었고, 2011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참고문헌

『한국민속기악음반사전』 (노재명, 국악음반박물관, 2001)
『무형문화재조사보고서 제118호 줄타기』(김천흥·정화영, 문화재관리국, 1975)
「줄놀음의 연행체계와 연행원리」(김대균, 안동대 석사논문, 2006)
집필자
권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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