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보이스 (Key Boys)

대중음악
단체
1960∼70년대 활동한 한국의 5인조 록 밴드(그룹 사운드).
정의
1960∼70년대 활동한 한국의 5인조 록 밴드(그룹 사운드).
개설

애드 훠, 코끼리 브라더스와 더불어 한국 록의 효시로 간주되고 있다. 초기에는 주로 영미 팝 음악의 번안곡을 노래·연주했지만, 중기인 1960년대 말∼1970년대 초「바닷가의 추억」, 「해변으로 가요」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설립목적

1963∼1964년 경 미8군 무대와 일반 무대를 오가면서 활동하기 위해 결성되었다. 활동 초기 ‘한국의 비틀스’라는 별명에서 보듯 당시 세계적 선풍을 일으키던 비틀스의 이미지와 컨셉을 차용하여 만들어졌다.

연원 및 변천

결성 당시 멤버는 차중락(보컬), 차도균(베이스 기타), 윤항기(드럼), 김홍탁(기타), 옥성빈(키보드)이고 통칭 ‘1기 키보이스’라고 불린다. 였다. 『한국의 비틀스 Key Boys』(1964)는 애드 훠의 데뷔 앨범과 더불어 한국 록 음반의 효시로 꼽힌다. 1969년에는 원년 멤버가 모두 탈퇴하고 장영(베이스 기타), 박명수(기타), 조영조(기타)를 주축으로 여러 멤버가 들고 났다. 통칭 ‘2기 키보이스’라고 부르고 6인조 혹은 7인조 형태를 취하기도 했다. 원년 멤버 가운데 차중락과 차도균은 솔로 가수로, 윤항기와 김홍탁은 각각 키 브라더스와 히 화이브/히 식스의 리더로 성공적 경력을 지속했다.

기능과 역할

1기 키보이스는 비틀스를 비롯한 1960년대 영미 팝의 번안곡 중심으로 활동했고, 직업적 작곡가의 창작곡을 일부 수록했다. 2기 키보이스 때인 1969년 5월「제1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최고상’과 ‘연주상’을 차지하면서 인기 그룹으로 부상했고, 그 후「바닷가의 추억」, 「해변으로 가요」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현황

1971년을 마지막으로 음반을 발표하지 않았다. 원년 멤버인 김홍탁, 윤항기, 차도균 등은 가수, 연주인, 제작자로 음악 관련 활동을 계속했다.

의의와 평가

자작곡을 만들어 연주하지는 않았다는 점에서 후대의 평가가 인색한 편이었지만, 최근에는 한국에 록 음악을 뿌리내리고 대중화하는데 공헌을 했다는 재평가가 이루어지고 있다.

참고문헌

『한국 팝의 고고학 1960: 한국 팝의 탄생과 혁명』(신현준·이용우·최지선, 한길아트,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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