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숭겸(申崇謙, ?~927)의 본관은 평산(平山)으로, 평산 신씨(申氏)의 시조이다. 초명은 능산(能山)이고, 시호는 장절(壯節)이다. 궁예(弓裔) 말년에 홍유(洪儒) · 배현경(裵玄慶) · 복지겸(卜智謙)과 함께 혁명을 일으켜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해 개국 일등공신(開國一等功臣)에 봉해졌다.
신숭겸 신도비는 1805년(순조 5)에 후손 신대현(申大顯)과 평산 신씨 종인(宗人)들에 의해 세워졌으며, 춘천시 서면 방동 1리에 있는 신숭겸 묘역 앞에 위치하고 있다. 신도비문은 비문의 찬자인 김조순(金祖淳)의 문집 『풍고집(楓皐集)』 권11에 「고려 태사 장절 신공 신도비명」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다. 2009년 5월 22일에 강원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신숭겸 신도비는 팔각지붕형 갓석, 비신, 비대석 등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비신의 높이는 228㎝, 정면 폭은 106㎝, 두께는 39㎝이다. 비신의 전면 상단에 “고려 개국공신 태사 장절 신공 신도비명(高麗 開國功臣 太師 壯節 申公 神道碑銘)”이라고 쓴 전액(篆額)이 새겨져있으며, 비신은 작은 글씨의 행서(行書)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순조의 부마였던 외손 김조순(金祖淳)이 지었고, 글씨는 당대의 명필이자 후손인 신위(申緯)가 썼으며, 전액(篆額)은 당시 좌의정이었던 서매수(徐邁修)가 썼다.
신도비의 내용은 신숭겸이 세거지를 곡성(谷城)에서 춘천(春川)으로 옮긴 일, 홍유(洪儒) · 배현경(裵玄慶) · 복지겸(卜智謙)과 함께 궁예를 몰아내고 왕건(王建)을 추대하여 고려 개국 일등공신에 오른 일, 공산(公山) 전투에서의 태조를 대신한 죽음, 신숭겸의 충렬(忠烈)에 대한 역대 임금의 추숭 사업 및 사후 정령(精靈)의 현신과 기이한 행적 등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