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해관문서는 1883년(고종 20) 2월부터 1885년(고종 22) 9월까지 인천해관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들과 업무처리에 관련된 내용을 담고 있는 문서들로, 해관원들이 육필로 기록하였다. 이 자료에는 121건의 문건이 수록되었는데, 원래 진기홍(우정사학자)씨가 수집하여 소장하고 있었다. 그 후 1980년 관세청에 기증되어 서울세관 관세박물관에 소장되었으며, 하드커버를 포함하여 199장의 영문 필기체로 작성된 양장본이다. 2009년 11월 5일에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이 문서는 1883년(고종 20) 인천해관을 설립하면서 임명한 해관장을 비롯한 관련 직원의 임명에 관한 문서를 시작으로, 1885년(고종 22) 9월까지 인천해관의 업무처리에 관련된 문서들을 수록한 문서철이다.
이 문서는 1883년(고종 20)에 작성된 문서 11건, 1884년(고종 21)에 작성된 문서 13건, 1885년(고종 22)에 작성된 97건을 모은 문서들로서, 모두 121건(32.5×20.0㎝)이 합철된 것이다. 이들 문서는 스트리플링(A. Stripling)이 당시 인천해관 총세무사이자 조선국 외무협판(오늘날 외무부차관에 해당)이던 묄렌도르프(Paul Georg von Möllendorf, 穆麟德)에게 보고한 문서가 다수를 점하고 있고, 나머지는 인천해관에서 외부로 발송한 문서와 해관의 직원이 해관장에게 보고한 문서들이다.
문서의 내용은 조선해관 입사지원서, 조선해관 채용공문서, 조선우정국파견 일본인 체불임금 정리관계문서, 인천제일국립은행과 인천해관간 대출계약 관련 문서, 조선내 미개항지(군산, 법성포, 목포) 조사보고서, 인천해관 화재피해 관련문서, 외국인 해관원 징계 관련 문건, 조선 3개항장 기상관측 보고서, 정부면세 요구에 대한 조회문, 해관 수납금에 대한 월보, 묄렌도르프 해임 및 총세무사 서리 지명문서 등이다.
문서 가운데에는 조선의 상황을 조사 보고한 2편의 장문의 보고서가 포함되었는데, 한 건은 인천해관 직원인 슐츠(F.W.Schulze)가 해관장인 스트리플링(A. Stripling)에게 보고한 문서(1885년 3월 31일)로 당시까지 개항하지 않은 남서해안의 군산 · 법성포 · 영산강 포구를 항해하면서 전라도 지역의 쌀 교역에 관하여 조사한 보고서이다. 다른 하나는 인천해관장인 스트리플링이 총세무사 묄렌도르프에게 보고한 문서(1885년 8월 21일)로서 조선해관 설립부터 1885년(고종 20) 6월말까지 인천, 부산, 원산의 개항항의 관측에 기초한 기후와 기상에 관한 보고서이다.
인천해관문서에서만 얻을 수 있는 유일한 기록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우리나라 해관 설립일이 1883년(고종 20) 4월 24일임을 정확히 알려주고, 한반도에서 근대화된 기상 관측 개시일이 1883년(고종 20) 9월 1일임과 인천해관의 화재 발생일이 1885년(고종 22) 7월 16일임을 명확히 알려주고 있다. 그 밖에 초대 세무사 묄렌도르프와 조선인 최초 세관 직원 남궁억의 사진, 조선 해관에서 수납한 각종 화폐 사진 등이 수록되었다.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는 해관 관련 자료가 대부분 1885년(고종 22) 이후의 것인데 비해, 인천해관문서는 1883년(고종 20) 2월부터 9월 사이의 개항 초기 해관 직원들의 육필로 작성된 보고 문서로 시기적으로 앞서고 있고 영문만으로 기록된 유일한 조선 정부 공문서라는 점에서 보존 가치가 높다. 인천해관문서는 해관사 연구는 물론이고, 1880년(고종 17) 중반 경제 · 외교 · 해운 · 기후 등에 관한 연구에도 큰 도움이 되는 자료로 평가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