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寒岡) 정구(鄭逑, 1543~1620)의 본관은 청주(淸州)로, 자는 도가(道可), 호는 한강(寒岡)이다. 이황(李滉)과 조식(曺植)의 문인으로, 성리학과 예학뿐만 아니라 다방면에 걸쳐 박학하여 후에 근기남인 실학파에 영향을 주었다. 관직은 여러 차례의 지방관을 거쳐 형조참판 · 대사헌 등을 역임하였으며, 시호는 문목(文穆)이다.
이 신도비는 1633년(인조 11)에 정구의 선영이 있는 경상북도 성주군 수륜면 수성리 갓말마을 뒷산인 창평산 부근에 건립되었다가 1663년(현종 4)에 정구의 묘소를 성주읍 금산리 인현산으로 이장하면서 지금의 위치인 회연서원(경상북도 유형문화재, 1974년 지정) 경내로 옮겨 세워졌다. 회연서원은 1974년 경상북도 유형문화재(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신도비문은 신흠의 문집 『상촌고(象村稿)』 권26에 '「정한강 신도비명(鄭寒岡 神道碑銘)」'이란 제목으로 실려 있고, 민족문화추진회(현재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간행한 『(국역)상촌집』4에 번역문이 실려 있다. 2009년 7월 6일에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되었다.
정구의 신도비는 비신(碑身) · 이수(螭首) · 귀부(龜趺) 세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형태도 온전하게 잘 남아 있다. 이수에는 쌍룡문(雙龍紋)과 여의두문(如意頭紋)이 깊이 새겨져 있고, 귀부는 귀갑문(龜甲紋)이 양각으로 얕게 새겨져있다. 신도비의 전체 높이는 390㎝이며, 비신의 높이는 230㎝, 정면 폭은 106㎝, 두께는 29.5㎝이다.
비신의 전면 상단에 “문목공 한강 정선생 신도비명(文穆公 寒岡 鄭先生 神道碑銘)”이라고 쓴 전액(篆額)이 새겨져있으며, 비신에는 4면에 걸쳐 작은 글씨의 해서(楷書)로 비문이 새겨져 있다. 비문은 상촌(象村) 신흠(申欽)이 지었고, 글씨는 김세렴(金世濂)이 썼으며 전액(篆額)은 김광현(金光炫)이 썼다. 신도비에는 가계, 관력, 임해군(臨海君) · 영창대군(永昌大君) 구원 상소 관련 내용 및 학통 연원, 성품, 저술에 관한 내용이 실려 있다.
한강 정구 신도비는 조성 연대가 오래되어 국가유산으로서 가치가 높으며, 조선 성리학사에 뚜렷한 입지를 갖는 한강 정구의 역사적 위상을 보여주는 유물이라 할 수 있다.